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11)

잡탕(雜伴兒), 자오둥반도(膠東半島) 지역의 설음식

주희풍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한국의 중화요리에는 ‘잡탕’이라는 요리가 있다. 문화문화원형백과 조선시대 식문화(2003)1)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잡탕(雜湯)이라는 요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한국의 중화요리 ‘잡탕’과는 전혀 다른 요리다. ‘잡탕밥’의 ‘잡탕’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더 많을 듯하다. 이 요리의 정확한 명칭은 하이자발(海雜伴兒, h?i z? b?nr)이지만, 한국의 화교들은 자발(雜伴兒, z? b?nr)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중화요리에는 이와 비슷한 요리가 있다. 바바오차이(八寶菜, b? b?o c?i)와 취엔지아푸(全家福 qu?n ji? f?)가 그것이다. 바바오차이와 취엔지아푸는 우리에게 익숙한 팔보채와 전가복이다. 중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전자와 같이 써야하지만, 여기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잡탕’, ‘팔보채’, ‘전가복’으로 쓰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 가지 요리의 차이점을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한국의 중화요리의 팔보채는 현재 중국의 팔보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서 항상 ‘스푸’들에게 그 차이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한국의 중화요리의 조리장을 화교들은 스푸(師父, 師傅 sh?f?)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사부’다.) 그러나 화교 스푸들은 ‘잡탕’과 ‘팔보채’ 그리고 ‘전가복’의 차이점을 뚜렷한 제시하지 못한다. 이들의 대부분이 조리법은 같으나 부재료의 선택 혹은 칼질에 차이가 있다고 하거나, 전가복에는 고급 재료를 사용한다는 정도다. 심지어는 이 세 요리가 다 똑 같다고 말하는 스푸도 있다. 아래는 이 세 요리의 사진을 비교한 것이다.


전가복 (全家福, 취엔지아푸)

      

팔보채 (八寶菜, 바바오차이)


잡탕(雜伴兒, 자발)


사진에서 보이듯 스푸들이 말 한대로 별 차이를 발견 할 수 없다. 다만 전가복에는 전복과 송이가 보인다. 그래서인지 전가복의 가격이 다소 비싸기도 하다. 하지만 예를 들어 짜장면에 전복과 송이를 넣었다하여 짜장면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비슷한 메뉴가 한국의 중화요리에 있는 것일까?


한국의 일반 중화요리 식당의 메뉴

(이 세 요리가 메뉴판 있는 것이 보인다.)


자오둥반도 지역에서는 설날 때 잡탕 雜伴(잡반)이 상에 빠질 수 없다고 한다. 이 요리를 설날에 먹는 이유는 간단한다. 요리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雜(잡)의 사전적 의미에는 “섞이다, 뒤섞이다” 등의 의미 외에도 “만나다, 만나게 하다, 모이다, 모으다”의 뜻도 있다. 그런가하면 伴(반)의 사전적 의미에는 “짝, 반려(伴侶: 짝이 되는 동무), 동반자(同伴者), 벗(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 동료(同僚), 큰 모양, 한가로운 모양, 모시다, 동반하다(同伴--), 의지하다(依支--)” 등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설날 때 全家團圓(온 가족이 한데 모이다) 즉, 온 가족이 평안하게 한 곳에 모이는 것을 희망한다. 그래서 자오둥반도 지역의 사람들은 설날 때 온 가족이 한 데 모였다는 의미로 잡탕을 먹는다. 아래는 중국의 한 미식가의 블로그 내용이다.


          小?候逢?年?,我?和叔叔家聚在一起吃???,小叔是做??的,?一餐???理所?然

        的由他掌勺了,每????一“?池”(一?大??子)的“海?伴”端上?,我??些小孩子?早

        已迫不及待的?箸向??菜“??”了。……


          “全家福”其?也叫海?伴,是用扇?丁、海螺肉、?仁、??等??海?烹?出?的一道美

        肴,制作?道菜其?不?,……2)


          어릴 적 설날이 올 때면 우리는 삼촌네에 모여서 團圓飯(단원반)3)을 먹는다. 작은 삼촌의 직

        업은 요리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작은 삼촌이 요리한다. …… 매번 이 가득 찬 ‘수족관’(특대

        사이즈의 접시)인 ‘잡탕’이 상에 오르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체면불고하고 접시를 향해 진

        격을 한다. …… 


          ‘전가복’ 사실 ‘잡탕’이라고도 부른다. 관자와 소라, 새우, 오징어 등 여러 가지 해산물로

        조리한 요리다. ……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전가복은 곧 잡탕이며 설날에 먹는 요리이다. 아래는 ‘國宴’全家福‘原名海雜拌’4)(국가연회 ‘전가복’ 원래의 이름 잡탕)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실린 기사다.


        ……有人??申建?“全家福”?道菜的???申建?回答?:“那??候,‘全家福’也?有??

        吉利的名字,在那?年代叫海?拌。”5)


        …… 선지안궈 요리사한테 ‘전가복’의 유래를 물은 적이 있다. 신지안궈는 이렇게 답했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고급스럽고 길한 느낌의 요리이름도 없었다. 그 때는 그냥 ‘잡탕’이라

        고 불렀다.


위 기사에서도 ‘전가복’의 원래 이름을 ‘잡탕’이라고 한다. 선지안궈(申建國)은 1949년 10월 1일에 있었던 신중국 건립 축하 만찬의 총괄 스푸다. 위 기사는 그가 당시를 회고하는 내용 중 일부이며 우리에게는 흔한 잡탕이 중국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요리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아래는 그날의 전체 메뉴다. 

 

        ??第一宴6)

        四小?:?州小乳瓜、琥珀桃仁、白糖生姜、蜜?金橘

        八凉菜:??瓜?、香麻??、?子冬?、芥末?掌、???、????、?江肴肉、桂花?水?

        六?菜:?炒翡翠?仁、???汁四?、?坡方肉、蟹粉?子?、全家福、口????

        一?菜:??煮干?

        四道点心:炸年?、????、艾??、淮??包

        主食:??八??等


밑줄 친 부분이 바로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전가복 즉 잡탕이 되겠다.

  

그렇다면 잡탕이 전가복으로 불린 이유는 무엇일까? 전가복의 한자는 全家福이다. 이 세 한자의 사전적 중국어의 의미는 ‘가족사진’이다. 잡탕 즉 雜伴(잡반)이 가지고 의미 全家團圓(전가단원: 온 가족이 한데 모이다)와 같다. 실제로 현재 중국에서는 전가복이라는 요리가 각 지역마다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각기 다른 형태의 요리로 존재한다. 화이양차이 (淮陽菜 화이양 요리)에도 전가복이 있다. 화이양요리의 전가복은 해산물이 아닌 닭의 내장과 돼지고기 완자, 힘줄 등을 야채와 전골 형태로 조리한 요리다. 현지에서는 따자회이(大雜?d? z? hu?)라고 하는데 설날에 모두모여서 즐겨먹는 요리라고 한다. 중국의 저명한 미식가이자 음식 평론가인 둥커핑(董克平)7)은 2012년 1월 28일 중국 CCTV-1에서 방송된 ‘天天飮食(톈톈인스)’8)라는 프로에서 “상하이에는 팔보채라는 요리가 있는데 설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이 요리는 화이양 요리인 전가복에서 온 것이다.”고 하면서 “고급스럽고 길한 느낌의 이름인 전가복을 상하이에 맞게 더 고급스럽고 더 길한 느낌의 이름인 팔보채로 개명한 것이다. 팔보는 불교의 여덟 가지 보물9)을 가리킨다.”고 소개한다. 다시 말해 저차이(浙菜 저장요리) 팔보채는 화이양요리 전가복이고, 단지 요리의 이름만 팔보채로 부르는 것이다.


미식평론가 둥커핑(董克平)이 저차이의 팔보채를 설명하는 장면


이 세 요리는 첫째, 모두 설날의 먹는 음식이라는 것 둘째, 가족들이 한 데 모였다는 의미로 먹는 음식 셋째, 여러 가지 재료를 한 데 섞어 만들어 낸 요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차이의 팔보채와 루차이 잡탕은 요리의 이름과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같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요리 자체로 봤을 때는 완전히 다른 요리다. 루차이의 잡탕은 해산물이 주재료지만 저차이의 팔보채는 화이양차이의 띠자회이 즉 화이야차이의 전가복과 같이 닭의 내장과 돼지고기 완자, 힘줄 등이 주재료다. 한국의 중화요리인 팔보채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의 중화요리인 팔보채의 초창기 모습은 어떠할까? 아래는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팔보채가 언급되는데10) 이것은 적어도 1930년에 팔보채가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耿奇樓漫話(경기루만화) 511)


耿奇樓漫話(경기루만화) 612)


아래는 1956년 동아일보에 실린 팔보채에 대한 조리법이다.


가정에서 만들 수 있는 中國料理13)


위 기사에서는 팔보채는 돼지고기와 양파, 배추, 시금치 숙주나물 등과 볶아서 물에 탄 녹말로 마무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중화요리에도 바바오차이(八寶菜, b? b?o c?i)이라는 같은 이름의 팔보채가 있다. 아래는 1950년 경향신문에 실린 일본의 최근상(日本의 最近相)이라는 칼럼이다.


 

일본의 최근상(日本의 最近相)14)


위 칼럼에서는 당시 일본의 소개하면서 “中華食店(중화식점)에 팔보채 한접시 백오십원, 잡채 한접시 백오십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중화요리의 메뉴에도 잡채라는 메뉴가 있다는 점이 다소 흥미롭다. 일본의 중화요리 팔보채는 한국의 중화요리 잡탕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띤다.


일본 중화요리 팔보채

 


게다가 밥에 팔보채를 얹은 덮밥 형식의 주카돈(中華? ちゅうかどん)도 있다. 이는 한국의 중화요리인 잡탕밥과도 매우 흡사하다. 아래의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두 덮밥 형식의 요리는 매우 닮아 있다.


일본 중화요리 주카돈 (中華? ちゅうかどん) 한국 중화요리 잡탕밥


아래는 일본의 중화요리 팔보채와 주카돈의 조리법이다.15)


        1. 八?菜を作る

        鍋に油を引き豚肉、各種野菜(玉ねぎ、にんじん、白菜、筍、きくらげなど)を炒める。エビ

        やイカなどの魚介類やうずら卵を加える事もある。

        その後ス?プで?く煮?み、最後に水溶き片栗粉でとろみをつけ、味を調える。


        2. 深皿にごはんを盛り、八?菜を上にかける。


        1. 팔보채 만들기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돼지고기, 각종 야채(양파, 당근, 배추, 죽순, 목이버섯 등)을 볶는데

        새우나 오징어 등의 해산물과 메추리알을 넣기도 한다.

        간을 맞추고 나서 녹말을 풀어 걸쭉하게 조리한다.


        2. 그릇에 밥을 담고 조리가 팔보채를 위에 얹는다.


이렇듯 일본의 팔보채는 1950년대 한국의 중화요리 팔보채와 매우 닮아 있다.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저차이의 팔보채와도 비슷하다. 다시 말해 지금 한국의 중화요리인 팔보채는 해산물 위주로 변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주카돈은 팔보채를 밥 위에 얹는 덮밥 형식이다. 잡탕밥도 덮밥 형식이나 이전에는 잡탕밥의 밥을 볶아서 조리 했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그렇다. 이렇듯 음식이란 현지의 수요와 요구에 맞게 변화한다. 그러나 요리가 가지고 있는 그 의미 자체는 반드시 그대로 계승해나가야 할 대상이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잡탕과 팔보채 그리고 전가복이 같은 요리라는 것과 중국의 설음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이 세 요리의 의미를 통해 중국인의 설날 문화까지 엿볼 수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설날 때 상서로우면서도 길한, 즉 운수가 좋은 행운이 찾아오길 바란다. 이것을 중국 사람들은 지샹(吉祥)이라고 한다. 雜(잡)자는 일반적으로 강한 부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설날에 빼 놓을 수 없는 하이자발(海雜伴兒)과 따자회이(大雜?)가 전가복으로 개명이 되었고, 다시 더 좋은 의미의 이름인 팔보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중국도 그렇지만 현재 한국의 중화요리에서는 잡탕이라는 요리가 메뉴판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동시에 점점 팔보채로 대체 되어가는 모양새다. 아래는 서울의 한 주점의 간판으로, 이 간판은 서울 좋은 간판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막걸리 카페


이 간판은 그 디자인과 조명의 조화를 통해 雜(잡)의 부정적 의미를 희석시켜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雜(잡)이 가지고 긍정적 의미인 “만나다, 만나게 하다, 모이다, 모으다”를 표현하기위해 글자를 한 데 모으고, 그 여백을 빛으로 채우는 설계가 눈에 띤다. 한국의 많은 스푸들이 이 점을 본받아 자발(雜伴兒)이라는 그들 고유의 고향음식이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ter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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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

http://blog.naver.com

http://tv.cntv.cn/ 화면 캡처

http://search.yahoo.co.jp/image

http://search.yahoo.co.jp/image

http://terms.naver.com 




1)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조선시대 식문화), 2003, 한국콘텐츠진흥원.


2) 《海?伴“全家福”》 http://blog.sina.com.cn/211314a에서 인용. 黎?的博客. 2006


3) 명절(특히 설날)에 가족이 함께 모여 먹는 밥.


4) 잡탕의 중국이름에서 ‘伴’으로 쓰는 경우와 ‘拌’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전자 ‘伴’을 쓰는 것이 이 요리의 성격에 더 부합한다.


5) 《掌?大?傅揭秘?色菜肴背后的故事》, 〈原??:?宴“全家福”原名海?拌〉

http://beijing.qianlong.com/3825/2014/10/05/8585@9917512.htm에서 인용. 千龍網 2014.


6) 동상.


7) 둥커핑(董克平) 중국 다큐멘터리 《舌尖上的中? 혀끝 위에 중국》의 고문이자 중국 cctv 《中?味道 중국의 맛》 상임고문이며 중국에서 저명한 미식평론가다.


8) 1999년 2월 22일부터 현재까지 매일 06:35에 방영되는 중국 CCTV-1의 간판 프로다.


9) 불교의 여덟 가지 보물은 ‘티벳팔보’라고도 부르는데 보산(寶傘), 금어(金魚), 보병(寶甁), 묘련(妙蓮), 우선해라(右旋海螺), 길상결(吉祥結), 승리당(勝利幢), 금륜(金輪) 여덟 가지를 가리킨다.


10) 1930년 9월 16일/17일 동아일보. 7면, 생활/문화 소설을 참고할 것.


11) 1930년 9월 16일 동아일보. 7면, 생활/문화 소설.


12) 1930년 9월 17일 동아일보. 7면, 생활/문화 소설.


13) 1956년 2월 5일 동아일보. 4면, 생활/문화 기사(뉴스).


14) 1950년 5월 23일 경향신문. 2면 사회 기사(칼럼/논단).


15) 일본 위키백과 참고. https://ja.wikipedia.org/wiki/%E4%B8%AD%E8%8F%AF%E4%B8%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