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지폐양식의 전지구적 확산 및 변용

김판수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대적 지폐는 11세기 이후 중국과 그 주변국들 간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송대에 최초로 발명된 지폐는 금·원에 의한 중국 지배와 더불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즉, 송대에 발명된 지역적 성격의 지폐는 민족과 국경을 넘어 전개된 상호작용 속에서 동아시아 지폐양식으로 발전되었고, 동아시아 지폐양식은 서구에 전래된 이후 장기간에 걸쳐 모방 및 변용되었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지폐가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현재 확인되는 최초의 지폐는 11세기 북송 시기 쓰촨 지역에서 등장한 교자(交子)였다.1) 당시 쓰촨에서는 제지·인쇄 기술이 상당한 정도로 발달했었는데, 매매교역 증대에 따라 금속 화폐 휴대가 큰 불편을 야기했고 또 산과 협곡이 많아 교통 불편도 가중되었다. 이러한 조건들 간의 유기적 결합은 쓰촨 상인들이 최초로 지폐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자극했다.

  

당시 쓰촨 상인들은 제각각 다른 지폐를 발행했기에 지폐 형태는 물론 기술적 정교함 등에서도 통일되지 못했고, 이 때문에 교자의 위조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다만, 교자는 다음의 과정을 거치며 사회에서 안정된 화폐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첫째, 쓰촨 상인들이 처음 발행·사용한 지폐는 기존의 종이 어음과 달리 시장(集市)에서 일반 화폐처럼 상품 매매에 활용되며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둘째, 쓰촨 지방정부 영향 하에 16개의 대규모 상인 집단은 연합하여 교자호(交子戶)를 설립, 개별 상인의 지폐 발행을 금지했다. 셋째, 지폐 위조를 막기 위해 교자의 동판인쇄틀에 인물, 꽃, 새, 건축물 등 도안을 그려 넣었다.

  

<그림 1>의 좌측은 당시 쓰촨에서 발행·사용된 교자의 한 종류이다. 이 교자의 경우 ‘문자 중심, 도안 주변’의 동아시아 화폐양식과 달리 도안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쓰촨의 교자가 기존의 동아시아 화폐양식과 달리 ‘도안 중심’ 양식을 취한 것은 위조에 따른 손해를 상인 스스로 감내해야 했기에 국가의 화폐 관리체제 보다 개별적인 위조방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1> 송대 쓰촨 지역 지폐(좌)와 금대 국가 지폐(우)


교자는 쓰촨 이외 지역에서 사용할 때 일정한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1세기 후반 무렵에는 샨시(?西) 지역까지 유통되는 등 중국 사회에서 점차 확산되었다. 송 조정은 지역에서 발생한 지폐를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하려 시도했지만, 영토 전체를 강력하게 통합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고 또 북방 유목 국가들의 잇단 침입에 시달렸기에, 끝내 국가 차원의 지폐 발행·관리 체제를 산출하지 못했다.

  

역사상 최초로 국가 주도의 근대적 지폐 발행 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금(金)대에 이르러서였다. 금 조정은 중앙에 전문적인 인쇄·관리 기구을 두고 ‘교초(交?)’(1154-1215년 사용)를 발행했는데(<그림 1> 우측 참조), 지폐 종류는 1관(?), 2관, 3관, 5관, 10관의 소액권과 1백(百), 2백, 3백, 5백, 7백50의 고액권이 있었고, 1214년에는 1천관의 고액권까지 발행되었다. 금의 교초는 송의 교자와 달리 ‘문자 중심, 도안 주변’의 동아시아 화폐양식을 취했고, 이는 이후 동아시아 지폐양식의 전형적 형식이 되었다.  

그러나 금 조정은 몽골의 영토 확장으로 정치적 역량이 약화되었을 때, 내부 자원을 약탈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지폐 발행량을 늘렸다. 이 과정에서 지폐의 실질 가치는 급격하게 저하되었고, 그 결과 지폐는 사회적으로도 외면 받게 되었다.

  

금대 형성된 동아시아 지폐양식의 국가적 성격은 원대에 이르러 현대적 의미의 지폐 발행 체계로 발전되었고 나아가 국가 단위를 넘어 초국적으로 유통될 수 있었다. 원 제국은 강력한 통치력에 기반하여 영토 내에서 현대적 ‘신용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는 지폐를 발행했고, 이는 원 제국의 확장과 더불어 동아시아는 물론 (제한적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원 조정은 초기에 각 지역에 한정된 백은 태환 지폐를 발행했고, 또 지폐 가치를 관리하기 위해 ‘교초상권법(銀?相?法)’을 제정했으며, 나아가 전문 관리기구인 ‘교초제거사(交?提?司)’를 설치했다. 원 세조는 1260년 비단과 은에 기반한 ‘냥(兩)’ 단위의 전국태환권 중통원보교초(中統元寶交?) 및 지원통행보초(至元通行寶?)를 발행했다.

  

이후 원 조정은 태환 지폐 체제에서 탈피하여 거의 현대적 화폐제도에 가까운 신용 화폐제도를 제정하고 실시하기에 이른다. 예리(?李: 1242-1292)는《지원보초통행조화(至元寶?通行??)》를 제정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초와 보초를 법정 신용화폐로 삼고 금·은·동전의 유통과 사용을 엄금한다. 백성들은 옛 지폐를 새 지폐로 또 훼손된 지폐를 멀쩡한 지폐로 교환할 수 있었고(일정한 수수료 발생), 이러한 지폐들을 유통 기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지폐 위조자를 사형에 처했고, 그 고발자에게는 상금을 주었다.

  

원대에 이르러 지폐는 국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고려에서는 원 간섭기인 13세기부터 원 제국 지폐가 유입되었다. 13세기 말 충렬왕 시기 원 황제의 조서와 더불어 지폐들이 대량 유입·통용되었는데, 이들 중 상당량은 원과의 교역 시 결제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원은 일본 정벌 시 고려에서 전함 건조 및 수군 임금으로 지폐를 활용했고, 또 고려왕의 하사품으로서 원 지폐는 민간에서 개인 지출, 시주 수단, 사찰 수리비용 등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 시기 지방 상인이 주축이 되어 지폐를 발행했다. 대표적으로 이세(伊勢)의 야마다(山田)에서 발행된 야마다하가키(山田羽書), 각 번(藩) 내에서 통용된 지폐인 한사츠(藩札)이다.2) <그림 2> 지폐들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지방 상인들이 발행한 지폐들은 ‘문자 중심, 도안 주변’ 및 세로형의 동아시아 지폐양식을 수용했다.


<그림 2> 야마다하가키, 후쿠이한사츠, 와카야마한사츠3)


도쿠가와 막부는 페리 제독의 내항에 굴복하여 1854년 3월 요코하마에서 가나가와 조약(神奈川?約)에 서명하고 두 개의 항구를 개항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에서는 기존의 지폐양식 이외에 서구에서 모방·변용한 ‘동아시아 지폐양식’ 등 다양한 지폐양식의 지폐가 발행·사용되었다(<그림 3> 참조). 


<그림 3> 19세기 중반 도쿄 외환회사(좌), 정부 지폐(중), 요코하마 외환회사(우) 지폐4)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강했던 도쿄 외환지폐와 외세의 영향력이 강했던 개항장 요코하마 지폐양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첫째, 지폐 형태 측면에서 세로형과 가로형의 차이이다(단, 두 지폐양식 모두 문자 중심이다). 둘째, 요코하마 외환지폐에 영어가 각인되고 ‘일본어’보다 더 강조되었으며, 달러 화폐 단위를 병기했다.


<그림 3>의 요코하마 외환회사 지폐가 왜 서구에서 모방·변용된 동아시아 지폐양식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지폐양식의 전지구적 확산과 변용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원나라 시기 지폐는 13세기 마르코폴로의 여행을 통해 유럽에까지 알려졌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지폐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14세기 명나라 지폐가 서양에 직접 전래되었고, 비로소 유럽인들은 중국 지폐에 대한 ‘낯선 인식’을 할 수 있었다.


<그림 4> 서구에 최초로 도달한 중국 지폐, 대명통행보초(월간화동, 2007. 9.)


유럽에서는 1483년 스페인이 무어인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일종의 전시화폐로 지폐를 잠시 사용했으나 현존하는 것은 없다. 1661년 스웨덴 스톡홀롬 은행이 유럽 최초로 지폐를 발행한 이후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지폐가 발행되기 시작했다.  


<그림 5> 17-8세기 유럽 지폐들(스웨덴, 영국, 덴마크)(월간화동, 2007. 9. & 2007. 10.)

  

흥미로운 것은 위 지폐들 모두 서구적 화폐양식과 달리 ‘문자 중심, 도안 주변’의 동아시아 지폐양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고, 지폐 형태 측면에서도 오늘날 보편적인 지폐양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로’가 길다는 점이다. 후자의 측면을 좀 더 살펴 보면, 동아시아 지폐양식의 경우 전통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글을 서술했기에 세로형 지폐형태가 자연스러웠지만, 유럽의 경우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 이후 동양과 차별적으로 좌에서 우로 글을 기술하는 방식이 확립되었기에, 이러한 ‘문자기술방식’ 차이는 17-8세기 유럽에서 지폐를 발행할 때 다소 어정쩡한 가로형 지폐형태로 발행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즉, 유럽은 중국 지폐에 대한 낯선 인식으로 인해 문화적 정체성에 적합하지 않은 ‘문자 중심’을 취했고, 또 동아시아 지폐형태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가로형 지폐를 발행했다. 


서구 지폐양식 형성에 있어서 동아시아 지폐양식의 모방과 변용의 문제는 1690년 서양에서 최초로 발행된 정부 지폐(추정)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그림 6>에서 알 수 있듯, 1690년 미국에서 발행된 정부 지폐에서 도안은 좌측 하단 가장자리에 또 지폐형태는 완전한 세로형이었다.


<그림 6> 1690년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발행된 지폐

   


19세기 중반 미국은 근대적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현대 지폐의 전형에 가까운 지폐양식을 확립할 수 있었다. 19세기 초 미국 발명가 퍼킨스(Jacob Perkins)는 철강 판형을 이용한 지폐대량 생산방식을 발명했고, 이러한 기술이 적용된 미국 지폐 중 <그림 7>의 1863년에 발행된 것은 좀 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림 7>에서 알 수 있듯, 19세기 중반 미국은 지폐 형태 측면에서 동아시아 지폐양식으로부터 탈피했고, 또 ‘도안 중심, 문자 주변’의 서구적 화폐양식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63년 미국 지폐 양식에서도 여전히 동아시아 지폐양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지폐 상단과 하단에 각인된 ‘긴 글’이다.


<그림 7> 1863년 미국 지폐

  

다만, 1863년 지폐 발행 이후 12년 만에 미국은 상단과 하단에 각인된 동아시아 지폐양식의 흔적마저 제거해버린 지폐를 발행했고, 이는 바로 <그림 8>의 지폐양식으로 나타났다. 


<그림 8> 1875년 미국 지폐

  

<그림 8> 이후 미국 지폐양식에서 ‘글’은 국가 명칭과 액수 등만 남고 거의 사라졌고, ‘도안 중심, 문자주변’의 서구적 지폐양식은 미국의 패권국가화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보편적 지폐양식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2월부터 총 5회에 걸쳐 연재된 [한중일 근대 지폐양식에서 동아시아 정체성 찾기]는 기존의 화폐 표상연구에서 도안에 근거한 ‘영토화폐와 민족주의’ 담론만 존재하는 문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분석 대상으로서 지폐양식(또 화폐양식)을 제안하고 또 공간적 경계를 영토국가로부터 지역·권역·전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도안 중심의 화폐 표상에서 탈피할 때, 문자 중심의 동아시아 지폐양식이 어떻게 서구 지폐양식 형성의 토대로 작용했는지 엿볼 수 있다. 


오늘날 한중일 3국의 지폐양식은 모두 가로형 지폐, 전면의 국어와 배면의 영어, 도안 중심과 문자 주변, 좌에서 우로 향하는 문자기술방식 등 서구적 지폐양식을 따르고 있고,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서 연재한 한중일 3국의 화폐양식 분석 및 11세기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약 10세기 동안 전개된 ‘동아시아 지폐양식의 전지구적 확산 및 변용’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고찰할 때, 우리는 현재 한중일 지폐양식에서 지역·권역적 정체성이 여전히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중국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동아시아 내부의 지정학적 구조 변동은 차후 장기적·점진적으로 전개될 동아시아 지폐양식의 새로운 변화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양한 동아시아 지폐양식 중에서 ‘전면 국어와 배면 영어’의 경우 가장 쉽게 변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권역적 성격의 ‘한자’가 전면 또는 배면에 슬그머니 병기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장기적으로 한중일 3국의 사회문화적 연대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조건이 될 것이다. 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어떤 국가는 국가 간의 갈등을 강화할 수 있는 ‘영토적·민족적’ 표상을 제거하고 친밀성을 강화할 수 있는 ‘지역적’ 표상을 중심으로 도안을 재편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화폐 표상 측면에서 지역적·권역적 연대 강화의 가능성은 한중일 각국이 동아시아 역내에서의 평화를 추구하며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화폐양식 연구는 단순한 문화 분석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분석에 기반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합을 현재적으로 상상하고 또 실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정치사회적 분석으로 확대될 수 있다. 즉, 화폐양식 연구를 통해 우리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정체성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고 또 그에 기반하여 현재 동아시아의 정치사회적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모자이크’를 구성하는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1)  중국에서 어음은 7세기 무렵 비전(飛錢)으로 처음 등장했다. 


2)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의 화폐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용어, 인물 사전, 2001.6.15, 솔출판사)


3)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의 화폐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용어, 인물 사전, 2001.6.15, 솔출판사)


4)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의 화폐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용어, 인물 사전, 2001.6.15, 솔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