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북이야기 (8)    근대 동북기업구조의 단면: 자본구성과 의사결정구조

근대 동북기업구조의 단면: 자본구성과 의사결정구조1)

김희신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청말 민국초기 중국에서 <公司律>, <公司條例>, <公司法> 등 일련의 공사 관련 법률의 등장은 기업의 설립에서 파산에 이르는 전 과정이 제도화되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중국도 법률로써 출자자의 권리와 책임이 규정되고 제도화를 통해 기업에 투자된 자본을 관리할 수 있게 되어 좀 더 안정적으로 장기적 자본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有限股分公司(주식회사)’는 중국의 법률이 정하는 가장 근대적인 기업형태이며, 주식 발행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여 설립되고 출자액만으로 책임이 제한되는 유한책임 기업이다. 법률로써 股東會(주주총회), 董事會(이사회), 경영자의 기능이 분화되고, 견제 가능한 체계가 형성됨으로써 전통적인 개인, 합자기업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주지하듯이 중국에 서구의 근대기업문화가 이식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서구적 기업지배구조의 형태가 중국에서 바람직한 기업지배 모델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실질적인 운용, 개방성의 정도는 지역마다, 기업마다 달랐다. 중국 동북지역에도 유한고분공사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기업의 구조를 근대화해 가는 과정을 거쳤다. 동북지역은 이민사회로 사회경제발달이 중국 관내지역에 비해 지체되었고, 1920-30년대에도 근대적 기업형태로의 전환은 매우 미미했다. 동북의 기업이라 해도 동일한 사업 환경에 있지 않았다.


동북지역 근대기업발전의 이해를 위한 개별기업의 대표적 사례로 1920년대 官·商 공동경영의 奉天紡紗廠에 주목해보자. 봉천방사창은 동북에서 면제품의 자급자족과 중국인 자본에 의한 기업경영을 목적으로 한 소위 성정부 주도의 기업이라 간주된다. 또 동북지역 최초의 대규모 기계방적회사이며 동북지역의 대표적 근대기업으로 동북경제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방사창 건립에 필요한 자본은 <공사조례>의 ‘고분유한공사’ 규정에 따라 官·商이 합자하여 모집되었다. 고분유한공사가 채무청산에 대한 股東(자본주)의 책임이 유한책임이었고, 또 제도적으로 기업공개가 이루어졌던 만큼, 자본을 혈연·지연에 기반하여 조달했던 전통적인 방식에 비해 광범위한 자본모집이 가능한 구조였다. <장정>에서는 자본총액을 奉大洋 450만원(國幣 300만원에 해당)으로 정하고, 1股(株)당 奉大洋 100원으로 하여, 4만 5천 股의 주식을 발행하기로 규정했다. 자본모집 당초에는 재정청이 250만원을 내고, 각지 商民으로부터 200만원의 주식을 공모했다. 최종적으로는 商民이 투자한 商股 외에 나머지는 官股로 충당함으로써, 官商 공동경영의 형태로 자본을 모집했다. 다만 장래에 商股의 수를 늘리고, 官股의 수를 줄여나가면서 최종적으로는 순수하게 商股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핵심 원리로 하는 근대적 기업에서 고동은 고동회를 통해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방사창의 股東會는 정기와 임시 고동회로 구분된다. 방사창은 매년 말 결산을 마친 후 3개월 내에 정기 고동회를 열고 전년도 영업상황 및 본년도 영업방침을 보고했다. 股東은 개회 5일전 동사회가 제출한 재산목록, 대차대조표, 영업보고서, 손익계산서, 공적금·준비금·잉여분배안 등 각 회계장부와 감찰원 보고를 열람할 수 있다. 그리고 동사회가 제출한 이상의 각 회계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했다. 각 회계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검사인을 선출하여 검사할 수 있다. 또 동사·감찰인의 임기가 만료된 경우 상고동사 및 감찰원을 선출하고, 기타 중요 의안에 대해 의결했다. 한편 임시 고동회는 자본의 확충, 장정의 의결 및 변경 등을 포함하여 방사창에 중요사건이 있거나 혹은 總股分(총주식)의 1/20 이상의 고동이 개회를 청구하면 방사창의 총리·협리가 董事會와 상의하여 수시로 기한을 정해 소집했다.


고동회 소집은 회기 1개월 전에 신문에 게재하여 공포하고 일시·지점을 명기하여 각 고동에게 통고했다. 방사창은 성정부에 관고대표의 파견을 요청하고 신문광고를 게재하는 것 외에 각 縣公署에 <股東會簡章>과 <商股股東股款數目表>를 첨부한 서한을 보내 고동회에 참석할 대표의 파견을 요청했다.


<紡紗廠章程> 및 <股東會簡章>에 규정된 고동회 소집, 참여 방법과 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다. 각 縣에서 투자한 각 戶 가운데 고동회 참여는 편의상 100股 이상인 경우로 한정하고 현지사가 인정한 대표 1명, 200股 이상인 경우는 대표 2명 등으로 유추하여 대표를 파견하도록 규정하였다. 투자지분이 100股에 미치지 못한 현에서 고동회에 참석할지 여부는 편리한대로 정할 수 있었다. 각 현의 고동이 사정이 있어 회의에 참석할 수 없을 경우에 위탁증서를 소지한 대표를 파견하는 것이 가능하며, 위탁증서가 없는 경우는 縣公署의 공문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의결권 행사의 주체는 고동 자신 혹은 위탁받은 대표이다. 시간 내 고동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거나 또는 대표에게 위탁하지 않은 경우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의결 및 선거 각 사무에 대해 별도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때 위탁할 대표의 범위에 대해서는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위탁증서 혹은 현공서 공문으로 이를 증명해야 했다. 각 상고고동이 공사의 상호나 공공기관의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회기 10일전에 합당한 증서를 작성, 발행하여 고동명부에 기재할 대표자 성명을 방사창에 보고해야 한다. 각 고동 및 그 대표가 개회 전에 보고, 등록하면 입장권을 발급했다. 고동회의 회장은 동사 가운데 1명을 공동으로 추천했다. 고동회 회의사항 자체와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표결에 참여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고동회의 의결사항은 <공사조례>의 특별규정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 회의에 참석한 고동 의결권의 과반수를 얻으면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며 可否가 동수일 때는 회장이 이를 결정했다. 고동회의 의결사항에 대한 표결방법은 회장이 임시로 정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방사창 고동회에서 각 고동은 1股당 하나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대주주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없다. 1股에 하나의 의결권을 갖도록 한 <공사조례>(145조) 규정을 따랐지만, “11股 이상을 소유한 고동의 의결권 행사를 장정으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한 <공사조례>의 대고동에 대한 의결권 제한규정이 <방사창장정>에는 들어있지 않다. 반면 고동회의 참가자격을 각 현의 고동은 편의상 100股이상인 경우로 규정하여 현지사가 인정한 대표를 100股당 1명씩 회의에 참가하도록 했다. 100股가 되지 않는 현의 경우 고동회의 참석 여부를 편리한대로 정하도록 했지만, 의사결정 최고기관인 고동회에는 실질적으로 小股東이 참여하는 것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방사창에는 官股로서 봉천성정부가 자본의 절반 이상을 출자하고 있고, 동삼성관은호를 포함하여 성정부 외에는 기타 大股東(대주주)이 부재하여 방사창의 경영은 官(성정부)을 중심으로 한 독단적 경영체제 구축이 가능한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大股東에 대한 의결권 제한규정이 없었던 방사창의 지배구조는 이후 瀋海鐵路公司(舊 奉海鐵路公司)와 같은 관상합자 기업의 설립·경영 과정에서 “大股東에 의해 小股東이 유린당할 수 있는 잘못된 본보기”나 “官에 의해 기업이 좌지우지되어 商民이 항쟁할 수 밖에 없는 사례”로 인식되었다.


실제 방사창 고동회의 주요사항에 대한 의결과정의 단면을 商股董事와 監察員의 선거실태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1926년 3월 10일 개최된 고동회에서 상고동사 선거가 방사창 총리의 조종에 의한 불법선거라는 이유로 일부 고동이 불만을 품고 省議會에 이의를 제기하고, 동사 지정을 철회해 줄 것을 청원하는 일이 발생했다.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고동회에서 자행된 불법행위에 대해 의견청구라는 형태로 성의회에 청원(소장)을 제출한 사건으로 주목할 만하다.


당시 정기고동회의 상황을 살펴보면 고동회에 출석, 등록한 인원이 각 縣 및 각 은행 대표 등 총53명이며, 총 대표권은 1만 5217股로 商股 총액의 반을 초과했다. 상고동사 및 감찰원 선출과 관련해서 西安縣 대표 胡國玉은 ‘투표선거(票選)’를 주장했고, 營口縣 대표 高永祺, 開原縣 대표 康季封, 봉천총상회 대표 王壽臣 등은 ‘추천선거(推選)’를 주장했다. 당시 임시주석으로 선출된 官股董事 ?兆元이 투표선거에 찬성하는 자는 기립하고, 추천 선거에 찬성하는 자는 그대로 앉아있도록 했다. 결국 기립 5명, 미기립 48명으로 다수표결에 따라 추천선거 방법을 채택하여 동사와 감찰원을 선출했다. 문제는 원래 선거장정에 투표로 선거하도록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표결에 따라 추천 선거의 방식을 채택했던 것에 있었다. 기사에 의하면 방사창 선거장정 제1조에는 상고동사는 상고 고동 가운데 5명을 투표로 선거한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선출 당시 방사창의 廠長(총리) 孫祖昌, 관고동사 ?兆元 등이 규정에 따르지 않고 백영정, 장지량, 팽현, 왕건극, 한강금 등 5명을 동사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투표선거를 주장했던 胡國玉이 반대를 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고동의 특권인 동사선거에서 廠長과 官股董事 등이 부정행위와 위법을 행하였으니 동사 지정을 취소하고 별도로 선거하기를 주장했던 것이다.


손조창이나 동조원은 모두 관고동사였다. 상고동사 선출과정에서 임시주석 동조원이 總理 손조창과 협잡하고 商股인 영구현, 개원현, 봉천총상회 대표 등이 이에 적극 호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추천선거를 지지한 商股의 영구현, 개원현, 봉천총상회는 각각 779股, 1155股, 1097股를 소유했다. 이들은 상고 중에서도 상당히 지분 소유가 많은데 반해, 추천 선거를 반대했던 호국광은 그보다 적은 서안현(총235股)의 대표였다. 이 사건은 호국광과 같은 中小 고동이 방사창의 경영에 무관심하지 않았지만, 고동회에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大고동의 권한 남용으로 인해 제약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가 성의회에 제출한 재선 신청이 그 후 어떠한 처리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만 당시 선출된 동사의 구성은 3년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 변경이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재선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위의 청원은 상고동사나 감찰원의 선거방식을 둘러싼 단순한 문제에서 비롯되었지만, 성의회에 재선을 요청할 만큼 고동회 내부에서 고동의 권리행사를 둘러싸고 官과 商, 혹은 大고동과 小고동의 갈등 관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시사되는 바가 크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http://www.ce.cn/

http://www.ckmenhu.5d6d.net/



1) 이 글은 『중앙사론』 제40집(2014.12)에 게재된 필자의 논문 ?중국동북지역의 기업지배구조와 기업관행?의 일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