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근대 지폐양식에서 동아시아 정체성 찾기 (1)

서구 정체성에 갇힌 일본 지폐양식1)


김판수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연재에 앞서

 

근대 화폐에 대한 기존의 정치사회적 연구는 영토 화폐 및 그 도안이 어떻게 국민국가 통합과 민족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쳤는지 다루었다. 실제로 화폐 표상에 대한 연구는 매우 희소함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진부한 주제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화폐 표상이야말로 일국적 국민국가를 재현하는데 가장 전형적 근거라는 것인데, 이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영토 화폐에 매개된 사회공동체와 서구 국민국가체계의 형성이라는 문제가 보편적으로 수용되기 때문이고, 또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처럼 인쇄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근대적 민족주의가 서구에서 비서구로 확산되거나 혹은 비서구에서 서구적 방식을 모방 혹은 도둑질한 것이라는 주장 등과 무관하지 않다.

 

도안 중심의 화폐 표상 인식을 탈피할 때, 우리는 근대적 화폐 표상과 영토국가·민족주의와의 관련성이 매우 협소함을 알 수 있고, 각 국가가 경험한 상이한 근대적 경험에 따라 지역·국가·권역·전지구적 차원의 정체성들이 모자이크처럼 덧붙여 있기에 한 겹을 걷어내면 다른 정체성 조각들이 숨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필자는 4회에 걸쳐 「한·중·일 근대 지폐양식에서 동아시아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로 전통적인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재현하는 ‘조각’들이 어떻게 각 국 지폐양식에 편재되어 있는지 탐색할 것이다. 일본, 한국, 중국 순서로 각 국가의 근대적 지폐양식의 상이한 형성을 다룬 후, 4회에서는 다소 장구한 역사 속에서 어떻게 동아시아적 지폐양식이 고착되고 또 해체되었는지 분석한다. 이 때, ‘지폐양식’의 정의는 도안, 단위, 문자, 언어, 문자기술방식, 위조방지장치, 일련번호, 지폐형태 등 지폐에 재현된 모든 개별적 표상과 틀이다.


1 _ 메이지 정부의 서구적 지폐 형태 도입


일본에서 보편적인 지폐 사용은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시작되는데, 중국 元 제국 지폐가 13세기에 마르코폴로를 통해 서양에 알려진 것을 고려하면 다소 특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원과 고려 연합군의 침략에 대한 증오. 둘째, 오랜 막부 체제 유지로 인한 지방 분권 체제의 견고함. 셋째, 신용화폐로서 지폐 사용은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합력 필요 등. 따라서 일본에서 지폐 통용이 일반화되었음은 당시 국제적 권력구조 및 중앙정부의 통합력 등에서 중요한 변화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도쿠가와 막부는 1853년 미국에 의해 개항된 이후 1867년 막부 최초로 지폐를 발행했고, 이후 일본에서는 1세기에 걸쳐 ‘자국’ 지폐의 고유한 틀을 구성하기 위한 여정이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도 1872년 2월 15일 메이지 정부가 발행한 지폐(<그림 1>)는 일본 근대 화폐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메이지 정부는 각 지방 및 민영 은행의 지폐 발행을 금지하고 발행권을 독점했다. 둘째, 지폐 전면에 일본 정부 문양 및 천황가의 문장을 각인함으로써 국가 정체성을 전국으로 유통시켰다. 셋째,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던 전통적 화폐 단위 ‘냥(兩), 푼(分), 전(錢)’을 넘어 새 단위인 ‘엔(圓)’을 표기했다.2) 이로써 일본은 제도적?형식적 측면에서 영토적 화폐를 발행했다.


<그림 1> 1872년에 발행된 정부 지폐


그러나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지폐양식은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근대적 지폐’와 질적 차이가 있다. 첫째, 독일에서 인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폐 형태는 여전히 전통적인 ‘세로 형태’였다. 둘째, 여전히 ‘문자’ 중심이었다. 셋째, 장인이 손수 ‘위조 방지문구’를 기입하는 방식이었기에 표준화가 불가능했고 대량 발행 또한 매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메이지 정부는 1년 후인 1873년 8월 20일 ‘근대적 지폐’ 만들기를 위해 더욱 전면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그림 2> 1873년 발행 1엔 및 10엔(圓)권


위 <그림 2>의 1873년 지폐는 뉴욕의 미국은행권발행사에 인쇄 의뢰하여 제작되었다. 이 지폐양식의 원형은 아래 1863년 미국은행(US National Bank)에서 발행한 지폐로부터 찾을 수 있는데(<그림 3>), 지폐 형태 및 도안이 문자에 비해 더욱 중요한 정치사회적 함의를 재현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1872년 발행된 지폐와 매우 이질적이었다.


<그림 3> 1863년 발행된 미국 은행 지폐


다만, 지폐 형태 및 도안만으로 <그림 2>와 <그림 3>를 대조하면,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지폐 양식’을 비교함으로써, 일본이 지폐양식의 서구화라는 ‘자기 강박’ 속에서 어떻게 영토국가적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는 주로 ‘언어’ 문제를 통해 드러난다.


2 _ 일본 지폐양식에 이식된 영어


메이지 정부는 1877년-1878년 1·5엔권 지폐 개정을 통해 지폐양식 측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개발’했다(<그림 4>). 즉 1873년 지폐보다 문자 수를 줄여 도안 중심을 강화하고 지폐에 영어도 이식하기 시작했다. 또 이전 지폐들이 주로 고대 신화와 역사를 다루었다면, 이제 서양 문명의 대표적 표상들을 그 자리에 채워 넣었다.


<그림 4> 1877년 ‘수병’?1878년 ‘단야옥’


특히 1877년 지폐는 <그림 5> 1875년 미국지폐 ‘문명’(또는 ‘해군정신’)을 차용한 것으로, 1874년 일본이 대만에 대한 청 제국의 영향력을 제거하며 보상금까지 획득한 대만 사건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 점증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때문에 1877년의 수병 도안 배면에는 ‘Y1N’만이 각인되었지만, 1878년 단야옥의 경우 배면 중앙 도안의 상단에 ‘NATIONAL BANK’를 하단에 ‘FIVE YEN’을 각인하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일본 지폐에서 영어 배치는 일본어와의 비율, 내용, 위치 등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변화되는데, 이는 일본이 영?미 헤게모니 국가들과 어떤 권력관계 속에 있는지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림 5> 1875년 미국 지폐 ‘문명’


이와 관련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1885년 발행된 최초의 태환은행권이다.


<그림 6> 1885년 일본 최초 태환은행권


메이지 정부는 은본위제 채택을 기념하듯 1885년 지폐 전면에 영어 태환 문구 ‘Promises to Pay the Bearer on Demand 100 YEN in Silver’ 및 ‘NIPPON GINKO’를, 배면에는 ‘NIPPON GINKO’와 ‘YEN’를 각인했다.

  

일본 지폐양식 역사에서 ‘영어’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단 세 차례이다. 페리 제독에 의한 강제 개항 후 막부 말 최초로 발행된 지폐인 1867년, <그림 6>의 1885년 태환은행권, 마지막으로 2차 대전 패망 후 미군정에 의해 발행된 1946년 지폐이다. 이 세 시기의 공통점은 일본이 영국?미국 제국주의 국가를 매개로 자본주의적 세계체계로 (재)포획되었다는 것이다. <그림 6>의 발행 시기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이 발표된지 약 2개월 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담론이 당시 국가 관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음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1880년대는 일본 지식인 및 관료들 사이에 어떻게 일본이 ‘서구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혼란 수준에 이르렀을 때였다.

  

예를 들어, 메이지 천황은 1882년 2월 21일 문부경 후꾸오까 타까찌까에게 내린 내지(內旨)에서 ‘듣자니 지금 독일의 제도를 모방하자는 주장이 점점 득세한다고 한다. 전에는 미국?영국을 모방하자고 하다가 이제는 갑작스레 독일이라고 하니 혹시 폐단이 없을까 걱정된다’라고 해서 독일[모델]로 기우는 데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일본은 재빨리 ‘국가 정체성’만이라도 견고하게 하는 것을 선택한다. 즉 1888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은 지폐전면에는 ‘일본어’만 각인하는 체제를 확정했고, 영어의 경우 배면에서 어떻게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배치되어야 하는지에서 차이를 두었다(아래 <표 1> 참고).


<표 1> 1873년~1948년 근대 일본 지폐양식 변화3)

시기

발행 명칭

발행

년도

전면 

언어

배면 

언어

배면의 

영어 유무

주요 도안

주요 상징

1

대일본제국통용지폐

1873

일본어

일본어

역사/신화

천황가 문양

2

대일본제국국립은행

1877-

1878

일본어/ 영어

근대화/문명화

3

대일본제국정부지폐

1881-

1883

일본어

신공황후

천황가 문양/

정부문양

4

일본은행태환지폐

1885-

1886

일본어/

영어

일본어/

영어

대흑천상

태양

5

일본은행태환지폐

1888-

1891

일본어

영어

태환 문구

역사인물

천황가 문양

6

일본은행태환권

1899-

1900

일본어/

영어

역사인물/신사

1910-

1917

일본어/

영어

7

일본은행태환권

1927-

1931

일본어/

영어

YEN만 표기

1942

8

일본은행권

(불태환지폐)

1944-

1945

일본어

9

일본은행권

1946-

1947

일본어/

영어

일본어/

영어

NIPPON or YEN 등 표기

역사인물/건물/비둘기

10

일본정부지폐

1948

일본어

영어

NIPPON GINKO 및 YEN 등 표기

인물/매화나무

11

일본은행권

1950-

1953

인물/후지산/일본은행


3 _ 미 점령군, 일본 지폐양식의 문자기술방식을 바꾸다


일본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 이후 금 태환을 정지, 지폐 배면의 영어 태환 문구를 ‘神社’와 ‘사찰’ 도안으로 대체 및 축소, 1944년에는 결국 영어 자체를 제거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미국에 의해 점령된 이후, 일본의 화폐 발행권은 점령군총사령부에 빼앗겼다. 일본 패망 직후 변경된 일본 지폐의 전면과 배면에는 오늘날 전세계 대다수 국가들에서 활용되는 지폐양식은 물론 미국에 의해 일본에서만 금지된 지폐양식이 등장한다. 전자의 경우, 배면에서 모국어가 제거되고 영어만 각인되는 지폐양식이다. 후자의 경우, 미 점령군이 일본 지폐양식에서 천황가 문양 및 신사 등의 군국주의적 표상으로 낙인찍힌 국가표상을 제거당한 것이다.


그러나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일본의 근대 지폐양식사를 통틀어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미군 점령군에 의한 ‘문자기술방식’ 강제 전환이다. 미 점령군은 1948년 일본 지폐의 문자기술방식을 ‘우->좌 방식’에서 ‘좌->우 방식’으로 전환했다. 일본 지폐양식에서의 군국주의적 표상 제거는 역사상 유례없는 강제적인 문자기술방식 전환이 동시에 수행된 것이다.


<그림 7> 1947-1948년 미 점령군의 일본 문자기술방식 변경


돌이켜보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약 1세기에 걸쳐 매우 적극적으로 지폐양식의 서구화를 추진했지만, 문자기술방식 만큼은 결코 변경하지 않았다. 즉 1948년 미 점령군이 변경하기 이전까지, 일본은 전통적 문자기술방식 방식을 계속 유지했었다. 이는 미군들의 시각에서 편의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이었겠지만,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적어도 지폐양식으로서는 굉장히 낯설고 불편한 것을 것이다. 미 점령군이 강제로 문자기술방식을 변경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일본은 지금도 여전히 서적과 기타 인쇄매체에서 전통적 양식과 서구적 양식의 혼용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4 _ 소결


이 글은 19세기 중반 미국에 의한 일본 강제 개항 무렵부터 20세기 중반 미 점령기까지 발행된 일본 지폐의 형태, 언어, 문자기술방식을 중심으로 일본 지폐양식의 서구화 과정의 굴곡을 살펴보았다. 일본 지폐 형태는 미국에 의한 개항 이후 능동적 서구화를 추구하면서, 언어는 서구 자본주의적 체계 틈에 하위 제국주의 국가로서 포섭되는 과정에서, 문자기술방식은 2차 대전 이후 미군에 의해 점령된 이후 강제로 전환되었다. 이처럼 일본 지폐양식의 서구화 과정은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들과 맺는 국제적 권력 관계의 변화에 따라 능동·수동·강제적 방식 등 복합적 양상을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근대 지폐양식은 단순히 국민국가 단위 통합성만 반영된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계로의 위계적 통합과도 깊은 관련을 맺으며 변화되어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살펴 볼 한국과 중국 사례에서는 일본과 달리 ‘지역성’ 문제가 국민국가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중요했음을 미리 언급하고 싶다. 지폐양식에 국한할 때 동아시아 각 국가의 국민국가적 정체성은 국제적 권력 관계 및 국내 지역과의 상호작용 속에 상이한 형태로 구성되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참고 도서>

야마무로 신이찌(2003), 『여럿이며 하나인 아시아』, 창비.

월간 화동.

페르낭 브로델(1996),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 : 일상생활의 구조』, 주경철 역, 까치.

日本貨幣商協同組合, 2007. 『日本貨幣カタ口グ』.

Helleiner, Eric(2003), The making of national money - Territorial currencies in historical perspective. Cornell Univ. Press.




1)  이 글은 [김판수.「근대 일본 화폐 양식의 서양화」, 『사회와 역사』, 제 81집(2009년)]를 부분 발췌 및 재구성한 것이다.


2)  현재 동아시아 삼국은 엔(円), 원(圓), 그리고 위안(元)으로 각각 다른 화폐 단위를 사용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동일한 화폐 단위인 圓을 사용하고 있다.


3)  이탤릭의 굵은 표시는 표상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게 재현되었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