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 문드러진 상처 - 중국향촌분규의 최대 피해자, 여성 (2)

사건 2. 채무와 형제분가

장샤오훙(張曉紅) 씀_ 중국 화남사범대학

강주화 옮김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여자죄수 Yqh의 남편은 형제가 4명이 있는데, 남편은 둘째이며 아래에 남동생이 두 명 있다. 큰 형은 일찌감치 결혼하였고, 시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다. Yqh는 본인의 작은 숙모의 소개로 남편과 약혼하였다. 그 후, 남편집의 주도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는 당시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방 세 칸짜리 벽돌집을 둘째 부부에게 주기로 허락하였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막내 아들을 데리고 이웃 마을로 재가(改嫁)를 하였고, 셋째 아들인 류펑은 마당 뒤편 토굴집에서 살게 되었다. Yqh의 남편은 광산에서 일을 하고 거의 집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Yqh는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Yqh와 셋째의 사이가 괜찮았다. 하지만 결혼 후 일 년이 지나면서부터 셋째 동생은 Yqh에게 돈을 달라고 조르기 시작하였고, 그 이유는 둘째 형이 결혼할 때 자기한테서 2000위안을 빌렸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만약 돈을 상환하지 않는다면 둘째 형 부부가 사는 집의 절반을 자기한테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유인즉 자기도 이제는 색시를 얻어야 할 때라면서 집이 없으면 어느 처녀가 자기한테 시집오겠냐고 한다. 하지만 Yqh는 당초 시어머니가 약속한 이 방 세 칸짜리 집은 자기들 부부의 소유라고 하며, 이러한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둘째(남편)한테 시집을 왔고 지금에 와서 어떻게 집을 셋째에게 주냐고 한다. 이 과정에서 Yqh의 남편은 자기가 동생한테서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하면서 아내에게 이 일에 간섭하지 말라 하였다. 하지만, 셋째 동생은 날마다 형님네 집에 와서 욕하며 소란을 피워서 Yqh는 도저히 집에서 지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Yqh는 남편과 함께 광산에 가서 살았다. 하지만 Yqh는 마음속으로 집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집을 셋째한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 하였다. 시어머니는 이미 재가를 하였고, 집의 일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관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매번, 시어머니를 찾아가 의논을 드리면 시어머니는 집은 이미 둘째 부부한테 주었기에 셋째를 신경 쓰지 말라고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가족의 삼촌들과도 왕래가 많지 않기에 누구도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큰 형님 부부는 도리어 셋째 동생을 부채질하여 셋째더러 Yqh를 찾아 소란을 피우라 하였다. 결국 Yqh는 참을 수 없어서 셋째를 속여서 토굴집으로 오게 하였고 그 다음 살해하였던 것이다.


중국사회의 기본적인 가족관계는 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기본삼각형 관계이다. 정점의 자녀가 성숙한 후 자신의 배우자를 만나 자녀를 낳게 되고, 이때 새로운 삼각형이 생긴다. 따라서 새로운 삼각형은 낡은 삼각형으로부터 이탈하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이탈하는 과정이 바로 “분가”이다. 이러한 확장, 분리, 대체의 과정 중에 집의 연속성이 나타나고 있다.1) 농촌에서의 현지조사를 통해 분가는 일반적으로 아들이 몇 명 있으면 몇 번을 분가하며, 마지막 아들까지 분가해야 분가가 완성되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아들이 결혼하면서부터 이는 가족이 확장으로부터 분산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분가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평균분배의 원칙에 따라 “보조” 혹은 “평균분배”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2) 이러한 이유로 농촌의 아들 있는 부모들의 제일 큰 부담과 희망은 자기의 아들에게 신부감을 찾아 주는 것이다. 신부 측의 예단, 집에 대한 요구 및 결혼식과 피로연과 같은 부담은 빈곤한 농촌가정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때문에 신부를 얻는 일은 한 가정 심지어 친척을 포함한 한 가족이 함께 노력해야 하고, 서로 도와야만 완성할 수 있는 막중한 임무이기도 하다. 특별히 부모가 건재한 가정에서는 부모가 가족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결혼 적령기의 아들에게 신부를 얻어준다. 만약 가정형편이 너무 안 좋으면 부모는 먼저 딸을 시집보내고, 그를 통해 얻은 예단을 아들에게 주어서 사용토록 한다. 낙후한 지역은 심지어 딸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아들에게 신부를 얻어준다. 이 사례 중, Yqh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들을 결혼시키는 막중한 임무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몫이 되었으며 Yqh의 시어머니는 자기의 능력범위에서 방법을 생각하여 한 아들이라도 더 신부를 얻게 하면서 가정의 중책을 해결해 나가려 하였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는 여전히 부모가정의 구성원에 속하며 부모와 형님들을 도와 독립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하지만 의무와 권리는 모두 서로 병행하는데, 부모는 아들에게 집을 나누어 주며 아들의 부양을 기대하고, 동생들은 형님이 가정을 이루는 것을 돕지만 동시에 부모와 형님들이 자기가 가정을 꾸리는 것을 도와주기를 기대한다. 셋째가 집안의 뜻에 따라 원래 부모의 집에서 나와 마당의 폐기된 토굴에 거주한 것은 둘째 형이 신부를 얻었으니 다음 차례로 신부를 얻을 사람은 자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가 그로 하여금 매우 불공평한 “분가”에 동의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친의 재가로 인하여 집에는 가장이 줄었고 이로 인해 셋째의 혼사는 어렵게 되었다. 물론 중국의 전통 풍속 중, 줄곧 “큰 형은 아빠와 같고, 큰 형수는 엄마와 같다”는 속설이 있지만 현대의 법률에서는 형과 형수가 성년이 된 남동생에게 신부를 얻어줄 의무는 없으며 바로 이 점이 셋째의 가슴을 짓누르는 큰 돌이 되었던 것이다. 부모가 계시지 않으면, 이는 곧 대가정의 와해를 의미하고 형님들이 대가정에 대해 지니는 의무는 구속력이 없게 된다. 형님들은 자신의 소가정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생활이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가능한 동생에 대한 의무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래서 큰 형님은 끊임없이 셋째를 선동하여 셋째로 하여금 둘째 부부한테 가서 집을 요구하라고 한다. 셋째는 아무런 지지를 얻지 못한 상황 하에서 둘째 형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을 통하여 자기의 불만을 표출하고 간접적으로 둘째 형님에게 압력을 가하였으며 둘째 형님 내외가 원래 자기한테 속하는 집을 내어 주거나 혹은 자기를 도와서 혼사를 준비해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전반적인 분쟁 과정 중, Yqh 남편의 셋째 동생은 형님이 결혼 할 때 2000위안을 빌려갔다고 강하게 우기면서 만약 이 돈을 상환하지 않으면 둘째 형님과 함께 집을 반으로 나누겠다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둘째 형님은 줄곧 명확한 답을 동생에게 주지 않았으며 동생과 정면으로 담화를 하였다기보다는 가능한 회피하려고만 하면서 거의 귀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셋째의 소위 채무라고 하는 것은 Yqh가 보기에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Yqh는 자기네 부부가 결혼할 때 셋째 동생은 2000위안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였는데 어찌 자기들한테 돈을 빌려줄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정말 돈을 빌렸다면 남편도 인정했을 것이다. 따라서 집을 나누자는 요구가 Yqh에게는 매우 억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Yqh는 이 집은 그녀가 시집올 때 시댁에서 그들 부부에게 물려준 재산이라고 확신하며, 만약 이 집이 없었다면 그녀와 그녀의 친정은 이 혼사를 동의하지도 않았을 것이라 한다. 당시 셋째는 주동적으로 뒷마당의 토굴로 이사를 갔으며 시어머니도 재가를 하였기에 새 신부 혹은 외부인이 보았을 때 집은 분명하게 둘째에게 준 것이다. 하지만, 셋째의 입장에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은 격이 되었다. 그는 만약 당시 자기가 둘째 형님의 결혼을 반대하면 마을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둘째 형님의 결혼을 동의한 것이다. 또한 그는 둘째 형님이 결혼하고 나면 그 다음 차례는 당연히 자신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모친은 재가를 하였고 큰 형님과 둘째 형님도 독립하여 나갔으며, 결국 자기의 혼사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어찌되었든 셋째는 두 형님 부부가 자기의 혼사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들을 원망할 수도 없으며 또한 이미 재가를 한 모친에게 자신의 편을 들어 달라고 할 수 도 없다. 그 이유는 어느 법률에도 형님, 형수 혹은 모친이 동생 혹은 아들을 반드시 결혼시켜야 하는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자로서 형님과 형수 문 앞에 가서 신부를 얻기 위해 돈을 대달라거나 집을 준비해 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셋째가 단지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이유라고는 둘째 형님이 결혼할 때 자신에게서 돈을 빌렸기에 필경 부채를 갚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하였다. 그는 아무런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둘째 형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으로 자기의 불만을 표출하였고, 간접적으로 둘째 형님에게 압력을 가하였으며 둘째 형님 내외가 원래 자기한테 속하는 집을 내어 주거나 혹은 자기를 도와 혼사를 준비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네이버 지식백과



1) ?旭?《?力?公正???土社?的??解???威多元》,天津:天津古籍出版社,2003年第63?。


2) Fortes,Myeyer,1958, “Introduction”,In Jack Good,ed,In the Development Cycle in Domestic Group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