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향촌사회 (7)

고향은 어디인가 : 촌락의 공간적 의미와 가치 재구성 ⑦


류자오후이(劉朝暉)1) 씀 _ 중국 절강대학

김희신 옮김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중국농촌에 가 본 적 있는 사람은 누구든 촌락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향토 생활의 정취에 감동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촌락의 공간 분포, 정원 구조, 주택 양식, 물길 방향, 종횡으로 놓인 마을길 등은 경탄을 자아낸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아름답고 절묘한 촌락 공간을 도대체 누가 계획하고 설계해 냈는지 알 수가 없다. 지방 사적(史籍)이나 촌락내 성씨(姓氏) 족보를 통해 단서를 찾아낼 수는 있다. 일반적으로 족보에는 촌락의 “토대를 마련한 조상”이 그곳에 자리를 잡아 개간, 정주하는 과정에 대해 기록했을 것이고, 아마 그중 일부 서술은 기괴하고 황당한 이야기로 채워졌겠지만 풍수와 윤리라는 두 가지 중요한 문화요소를 감출 수가 없다. 촌락이 조성되기 전의 풍수 측정이든, 아니면 촌락이 조성된 뒤의 풍수 해석이든 촌락의 자연 공간과 인문 공간에서 풍수가 지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자연 공간은 빗물, 습도, 채광, 풍향, 재해예방, 주택건축의 재료 선택 등 물리적 요소와 관련이 있고, 인문 공간은 촌락 내 사당·신묘의 위치, 각 가정·지파(支派)·성씨의 공간 분포 및 촌락이 소재한 지역 지리내의 역사가치 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전통촌락사회는 강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문화 흔적을 지닌, “가족윤리의 공간구조”라 간주할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현대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전통촌락공간의 인문적 가치는 해체, 폐기되고 심지어 완전히 무너졌다. 이를 대체한 것이 바로 “현대촌락”의 건설 관념, 즉 오늘날의 “신농촌 건설”이었다. 신농촌 건설은 현지의 “성향규획설계원(城鄕規劃設計院)”과 같은 기구가 주도하며 분명한 도시건설 방법을 갖고 있다. 취락형태상 도시의 공간구조는 향촌의 윤리구조와 다르며, 권력구조가 반영되었다. 어디가 중심이고, 어디가 주변인지, 어디가 권력 집중지역이고, 어디가 일반인과 상인분포지역인지 일목요연하다. 이런 “기능배치” 이념의 지도아래 촌락건설은 도시계획의 “하향(下鄕)”이라는 환상에 빠진다. 획일적으로 주택을 신축하고, 가지런히 마을길을 내고, 촌민위원회나 문화활동중심 등 공용 공간이 촌락의 중심을 차지했다. 촌민의 주택건설은 가정의 재산 다과와 관련이 있다. 별장 혹은 일반 주택 여부, 주택 크기, 공간 배치 등은 촌락 내 주인의 경제지위나 영향력을 반영했다. 결국 신촌락 건설의 공간구조가 “현대성의 이식”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낸 것은 부와 권력이지, 전통적 의미에서의 풍수와 윤리 등 문화적 가치는 아니었다.


촌락의 공간적 의미와 가치는 계속 변화 발전한다. 개괄해 보면 그것은 3단계를 거쳤다. 제1단계는 “전통문화가치” 단계이다. 촌락사회가 장기간 유가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천년 혹은 수백 년을 거친 촌락의 공간 구조나 시간의 흔적은 유가의 윤리문화가 투영되어 발현된 것이다. 제2단계는 “현대국가가치” 단계이다. 근대로 들어선 이후 국가는 줄곧 정권 건설의 방식을 통해서 주장하는 의식형태와 가치관을 촌락사회내로 “침투”시켰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에는 각 권력이 촌락공간에 대해 개조와 재건을 진행하고 “계급” 관념을 촌락사회에 입력함으로써 유가윤리의 의식형태를 대체하려 했다.(謝迪斌, 2012) 제3단계는 바로 “현대적 가치” 단계이다. 문명·현대·도시 등 핵심개념을 위주로 하여, 취락형태와 문화가치의 측면에서 촌락사회를 개조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성의 이식이 촌락사회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근본적으로 촌락사회의 전통성을 바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렬한 “전통문화부흥” 현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주로 조상과 신에 대한 제사 그리고 한동안 뜸했던 지방극과 민속공연활동의 활성화 등의 형식으로 나타난다.(劉朝暉, 2009) 분명한 것은 이 문화부흥현상은 “전통재건”의 한 과정이며, 전통문화가 예전의 “문화유산”에서 새롭게 촌민의 일상생활 행위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당대 중국의 촌락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有계획적 신농촌이며, 또 하나는 공동화된 촌락(空心村)2)의 출현이다. 각급정부가 추진한 “신농촌 건설”과 “아름다운 향촌” 계획은 “산 좋고, 물 좋고, 향수 어린” 생태문명 건설을 기대했다. 유감스럽지만 신농촌 건설을 통해 농민은 새 주택을 짓고 건물을 올리지만 심리적 적응에는 오히려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새 주택에 입주하길 갈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새 주택이 가진 기능배치가 종종 현대화, 편안함, 유행 등의 요구에 기초하여 원래의 주택과 촌락의 역사적 연속성을 경시하거나 무시한 결과, 예전의 “향촌 정서”는 점차 도시 스타일의 “이웃집 모드”로 약화되어 촌민이 새 주택에 입주해도 과거 서로 살피고 협조하던 시절을 계속 그리워하게 된다. 한편 공동화된 촌락의 촌민은 나날이 피폐해지는 오래된 촌락(老村)을 마주하게 되고, 그들의 후손은 감정적으로든, 행동적으로든 조상이 남겨놓은 촌락의 유산과 갈수록 멀어져서 이 또한 이어나갈 방법이 없다. 당장의 촌락 재건이 전통시대 “가족윤리의 공간구조”로 되돌릴 수도 없고, 또 도시건설의 권력구조를 옮겨놓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의 관건은 그 역사적 가치를 계승하고 보호한다는 전제아래 어떻게 촌락공간의 현대적 건설을 완성하는가에 있다.


촌락공간의 존재는 자연적인 역사과정이다. 촌락공간은 촌민에게 단순히 주거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본연의 가치에 대한 촌민의 공간적 친밀감과 문화적 심성(心性)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촌락공간은 향토문화보호의 실천단위가 될 수 있고, 또 전통문화가치부흥과 재건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는 “광대한 농촌이 지금 아주 풍부한 역사기억과 유래, 그리고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의 문화는 물질문화유산으로서 촌락의 기획, 각종 건축, 역사유적 등이 있고, 또 무형문화유산으로서 각종 민속, 민족 언어, 생활주택, 미술·음악·곡예·잡기와 각종 전통기예 등이 있다. 오래된 촌락은 물질문화유산과 무형문화유산의 종합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이 기본적으로 농촌에 존재하고, 문화의 다양성도 농촌에 존재하며, 민족의 뿌리가 농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馮驥才, 2009) 사실 촌락사회의 재건은 촌락의 물질 형태를 재건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 농경문화를 구원하고 부흥시킬 수도 있다.


촌락재건의 관건은 바로 촌락의 문화가치를 어떻게 지속, 보호, 발전시키는가이다. 촌락의 재건과정에서 물질문화보호는 원래의 터전과 형태를 기반으로 하며, 옛 것을 보존하고 새로운 것을 세운다는 원칙에 기초해야만 촌락 내 무형문화에 대한 보호, 특히 촌락공간의 의미부여와 문화가치의 재구성이라는 목표를 충분히 체현해 낼 수 있다. 촌락내 무형문화보호의 출발점이 문화 소유자 및 그 생존공간에 대한 보호에 있기 때문에, 이 공간은 과거를 회고하는 촌민의 잠재의식과 지역공동체(社區)에 대한 그리움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 촌락사회를 무형문화유산보호의 기본단위의 하나로 삼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대다수 무형문화유산이 “촌락에 거주”하는 현상을 반영하며, 둘째 촌락을 기본적 보호단위로 삼는 것이 무형문화유산보호의 “통일체” 원칙을 실천하기에 편리하다는 점이다. 셋째 무형문화가 지닌 활동 형태성, 인적 계승성, 사회 실천성 및 뚜렷한 지역공동체성 등의 특징이 촌락 공간 내에서 비교적 집중적으로 체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촌락의 재건과정은 반드시 원래의 취락형태를 보존 계승한다는 전제아래, 촌락공간에 대한 의미부여와 가치재구성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당장의 중요한 일이다.



<참고문헌>


馮驥才,?古村落是中國最大的文化遺産?, 

http://news.xinhuanet.com/newscenter/2008-16/15/content-8371429.htm 게재, 訪問時間, 2014년 5월 20일.

劉朝暉, ?村落社會與非物質文化遺産保護-兼論遺産主體與遺産保護主體的悖論?, 『文化藝術硏究』 第4期, 2009.

謝迪斌, ?論新中國成立初期中共對鄕村村落的改造與重建?, 『中共黨史硏究』 第8期, 2012.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www.hbjsw.gov.cn/ReadNews.asp?NewsID=467



1) 劉朝暉: 중국 절강대학 인류학부교수, 중국절강대학 인류학연구소집행소장,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 어바나-샴페인(UIUC) 캠퍼스 동아시아·태평양연구소 방문학자.


2) (역자주) 농촌건설상, 농민이 주택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촌락 계획이 심각하게 지체되는 등의 원인으로, 농촌거주민의 점용지가 합리적이고 유효하게 이용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신축주택이 대부분 마을 외곽에 집중되고, 마을 안은 오히려 대량의 빈 택지와 놀리는 토지가 존재하게 되는 “空心村”이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