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향촌사회 (3)

| 기획 | 중국의 향촌사회 (3)


“토지혁명은 요원하다” - 토지유전(土地流轉)과 토지부권(土地賦權) ③

류자오후이(劉朝暉)1)·리페이(李沛)2) 씀 _ 중국 절강대학

송승석 옮김 _ 인천대학교 HK 교수


중국의 토지문제는 일반인민의 운명과도 관련되어 있고 정권교체와 같은 “국가적 명운”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사례들을 종합해보면, 중국공산당이 결국 정권을 획득하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농민들의 토지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공통된 결론이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이 새로운 형태의 도시화전략을 추진하는 가운데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농촌의 토지개혁이란 문제이다. 중국에게 있어 토지의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오래된 숙제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정부의 정책결정기관이나 학계 연구자들은 토지유전(土地流轉)3), 토지부권(土地賦權)4), 토지소유제 변혁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오랜 논의를 진행해왔고 이를 통해 토지소유권의 문제만 일거에 해결한다면 농촌사회발전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애를 써왔다. 그렇지만 사실 이러한 해결방식은 상당부분 전형적인 서구담론체계에 기댄 거짓명제에 불과하다. 토지소유권의 합법성이란 측면에서, 서구사회가 신봉하는 것은 극히 소박하고 순진한 자연법칙 즉, 누가 발견했고 누가 개간했고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이다. 식민시기,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전 세계 각 식민지에서 토착토지의 “합법적 점유”를 변호해왔던 근거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보면, 이는 능히 이해가 가는 일일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 토지소유권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예로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온 세상의 땅 중에 왕토가 아닌 것이 없다.(率土之?,莫非王土)”라는 명제가 전통적인 문화심리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에도 중화민국정권이나 중화인민공화국정권 공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토지개혁정책을 단행했지만 이러한 “문화적 기반”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중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토지는 지주의 것일 때도 있었고 국가의 것일 때도 있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집단적 소유일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농민 개개인이 토지를 소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농민 개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다고 한다면, 토지는 어떻게 “매매”될 수 있었던 것인가? 또 “매매” 후에는 어떠한 후과를 낳았던가? 오늘날 “역사적 시야”와 “현실적 관심”을 동시에 담보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상당수의 연구들을 보면, 토지매매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심지어는 “망국”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토지사유제하의 시장조절과 같은 토지유전의 유효한 기제를 찾아낼 수 있다면, 토지이용의 최적화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친훼이(秦暉) 같은 이는 이러한 주장을 “토지신화(土地神話)”라 비판한다. 이른바 토지신화의 논리란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적으로 중국의 토지매매는 토지겸병을 초래함으로써 사회모순을 가중시켰고 심지어 “농민전쟁”을 불러오기까지 했다. 둘째, 토지사유제하에서 시장적 기제를 통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토지 배치를 구현할 수 있다. 친훼이는 이를 두고 “두 가지 모두 잘못된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 토지재산권과 관련해 명제화된 이 두 가지 긍부정의 신화 즉, “토지매매―농민전쟁”과 “토지매매―합리적 배치”는 모두 근거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권(地權)의 명료화는 재앙적인 만악(萬惡)의 구렁텅이로 이끌지도 않지만 농업을 구제하는 만병통치약도 아니라는 것이다.(秦暉, 2006) 그렇다면 불치와도 같은 농촌의 토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먼저 중국의 전통적인 향촌사회와 토지제도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중국의 전통 향촌사회는 “토지에 속박된” 사회이다. 아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이는 인간과 토지 간의 모순이다. 즉, “무한적인” 인구증가와 “유한적인” 토지 간의 모순인 셈이다. 촌민(村民)에게 있어서 토지란 식량생산을 통해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는 유일한 터전이다. 그러나 이는 토지가 제공하는 극히 기본적인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토지가 계승이 가능한 재산이라는 면에서 종족계승의 상징이며 자신과 선조의 관계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토지는 후대의 생존을 담보하고, 후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혈통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토지를 지키는 것은 곧 효도를 다하는 길이고 토지를 잃는다는 것은 곧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길이다. 페이샤오통(費孝通)은 강촌(江村)과 녹촌(綠村)을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중국의 토지계승은 “다자계승(多子繼承)”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데, 이러한 계승제도가 평균적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이를 통해 중국의 토지이용은 필히 정경세작(精耕?作)의 방식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소농생산방식이 중국의 향토사회에 끼친 영향은 매우 확고하며, 이러한 원칙은 촌락의 조직형식과 다양한 관습 그리고 촌민의 관념 속에서 체현되고 반대로 촌민들은 이러한 조직형식, 관습, 관념을 통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묻히는 바로 이 땅 위에 단단히 결박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는 것이다.(費孝通, 2007 ; 2011)


기술발전이란 측면에서 획기적인 질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었던 전통 농업시대에 제한된 토지로 과량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농업생산규모는 지속적으로 줄이되 정경세작을 통해 토지생산을 증가시키는 길뿐이었다. 인류학자 Clifford Greetz는 인도네시아 발리 농민들의 토지생산방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agricultural involution)”란 개념으로 이러한 현상을 해석한 바 있다.(Greetz, 1963) 또한 경제사학자 황종즈(黃宗智) 역시 이 “involution”이란 개념을 차용해 중국의 토지사용문제를 역사적으로 분석했다. 그의 주장은 이러한 정경세작의 생산방식은 일종의 “정교화” 현상이지만 사실상 이는 “발전 없는 성장”(黃宗智, 1992)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발전 없는 성장”의 곤경을 누가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중국공산당의 신민주주의 혁명시기(1919∼1949) 토지개혁은 사실 이러한 역사적 실천이었다. 다시 말해, “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것인데 이는 언뜻 보면, “토지소유권의 혁명”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단지 토지의 “파생적 권리(衍生權利)” 즉, 사용권, 수익권, 처분권을 양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 토지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소유권에 있어서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바뀐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권주체(賦權主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 교체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후, 새로운 정권은 일련의 토지개혁정책을 통해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던” 토지의 파생권을 점차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도시의 토지는 “국유화”하고 농촌의 토지는 “집단화”한 것에 불과할 뿐, 농민 “개개인”에게 돌아간 토지는 그저 한 뼘 남짓한 “자류지(自留地)”에 지나지 않았다. 토지에 대한 권리 위축의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농민이었던 셈이다. 결국 “3급 소유제를 실시하되 생산대를 기초로 한다.(三?所有,??基?)”는 인민공사(人民公社)제도는 농민 소유의 토지 파생권을 거의 박탈해버린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실시된 가족단위농업생산책임제(土地家庭聯産承包責任制)가 어떻게 농민의 생산이 공전의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를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의 토지유전을 조성한 주요 동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기원한다. 즉, 시장경제의 추동과 도시 확장을 통한 발전이다. 우선, 시장경제의 발전은 농민의 자급자족적 소농경제의 모델을 변화시켰다. 시장은 농민에게 상품교역의 가능성을 제공해주었다. 농민은 시장의 정보와 자신의 천부적 조건과 자원을 통해 생산품종과 생산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단순히 식량작물만을 생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제공하는 기술발전을 통해 농업전문화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전문화된 농업생산은 필연적으로 정경세작의 식량생산 공간을 강제로 잠식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더 많은 토지를 집중해 규모화된 생산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도시건설과 발전의 필요성을 농촌으로 확장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농촌의 토지 특히, 도시 주변 농촌의 토지를 일종의 희소자원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토지의 잠재적 가치를 크게 향상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이로 인해 농민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토지를 자주적으로 양도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인구유동의 증가로 인해 대다수 농민들은 농업생산을 포기하고 도시공업 분야로 진출하게 됨으로써 토지를 계속 보유한 채 농업생산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외려 토지를 유휴지로 놀릴 바에야 전문 생산자에게 양도하거나 토지용도를 변경하는 편이 더 나은 일이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토지유전의 양대 내재적 추동력이다.  


물론 이러한 토지유전의 내재적 추동력은 강력하다. 그러나 실제 유전되는 양상을 보게 되면 매우 미미하고 기형적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심지어는 수많은 사회모순과 경제문제를 야기하기까지 한다. 가령,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철촌병거(撤村?居)”와 “토지정리”는 향촌의 생산양태와 생활양식을 파괴해버렸고, 강제적인 토지환수정책(徵地政策)과 그에 따른 보상정책의 결함은 집단소송 등의 각종 사건이 빈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날로 중차대해지는 시점에서 토지 유휴지가 증가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재 농촌토지의 집체소유제와 관련 토지법령제도의 토지권리에 대한 규정 미비 내지 결함 때문이다.(于建?, 2014) 따라서 토지유전의 성패 여부는 권리를 기초로 한 법률보장제도가 마련될 수 있는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결국, 새로운 시대의 도시 확장과 시장경제의 충격에 맞서 적극적이고 확고한(confirmative) 토지부권정책을 채택함으로써 농민의 토지에 대한 사용권, 수익권, 처분권을 최대한도로 만족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토지유전에 있어 변화해야만 하는 것은 토지부권의 구체적 내용, 권리주체, 법률적 지위이며, 이를 통해 권리로서의 토지가 향토사회 재건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孝通, 2007, 江村??, 上海人民出版社

?孝通, 2011, ?土中?, 北京出版社

?宗智, 1992, ?江三角洲小?家庭??村?展, 中??局出版社

秦  ?, 2006, ?史???中的?民土地??, 秦?文集, 最后??日期: 2013.1.17.

http://www.snzg.net/article/2007/1118/article_7979.html

于建?, 2014, ?民土地?益受?的制度原因, (未刊文)

Clifford Geertz, 1963, Agricultural Involution: The Process of Agricultural Change in Indonesi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 劉朝暉: 절강대학 인류학부교수, 중국절강대학 인류학연구소집행소장,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 어바나-샴페인(UIUC) 캠퍼스 동아시아·태평양연구소 방문학자.


2) 李沛: 절강대학사회학과 석사연구생.


3) 넓게 보면, ‘토지거래’의 의미라 할 수 있다.(옮긴이)


4) 토지의 권한을 이양하거나 분산함으로써 토지의 권능을 강화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