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의 오늘 (8)    선양시 톄시구의 공간변화와 노동자 ③

| 기획 | 동북의 오늘 (8)


인천대 HK사업단에서는 HK사업 2단계 기간(2012.09 - 2015.08) 동안 중국의 동북 지역(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중점 연구 권역으로 설정하여 연구조사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중국관행웹진』은 동북 권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지역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동북의 오늘> 칼럼을 기획하여 2013년 1월부터 연재 중입니다. <동북의 오늘>에서는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는 전문가들의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체제의 확산과 심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일상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선양시 톄시구의 공간변화와 노동자

박철현 _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 연구교수


_ 다큐멘터리 <鐵西區>의 공간생산과 계급의식


공간생산이 물리적 공간을 생산하는 것과 관련된 사회적 행위와 의미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톄시구 노후공업기지 개조에 관한 미학적 예술적 형식의 공간생산도 톄시구에 대한 공간생산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톄시구에 대한 미학적 예술적 형식의 공간생산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의미에 대해서 분석해보도록 하자.


톄시구와 관련된 대표적인 예술작품은 왕빙(王兵) 감독의 다큐멘터리 <鐵西區>가 있다. 상영시간이 9시간에 달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工廠", "艶粉街", "鐵路"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를 대상으로 해서 톄시구의 노동자들이 사회의 주류집단에서 주변집단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선양야련창(瀋陽冶煉廠), 선양전람창(瀋陽電纜廠), 선양알강창(瀋陽軋鋼廠)의 세 공장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와 관련해서 왕빙은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세 공장은 각각 다른 변화단계에 처해있는 동시에, 전체 톄시공업구가 1999년에 처해있는 총체적인 상황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선양야련창은 생산과 경영의 변화가 비교적 정상적인 공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공장 내에서 노동자들의 노동과 생활을 비교적 제대로 촬영할 수 있었다. 선양전람창과 선양야련창의 가장 큰 차이는 이 공장의 노동자의 90%는 이미 공장을 떠났고, 공장에는 중간 간부 이상인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이 공장에서는 지도부급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과 생활을 촬영할 수 있었다. 선양알강창은 기본적으로는 폐기된 공장인데, 단지 소수의 노동자자들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또한 왕빙은 인터뷰어의 질문에 답하여 "...계급의식은 꾸며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공장에서 노동자계급 같은 것은 보지 못했고, 역사적인 명사로서 자본가계급과 상대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일 텐데, 우리는 공장에서 자본가계급도 보지 못했으며, 우리가 본 것은 주체성을 상실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멍하게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거기에 작동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은 자유시장이 아니고 국가의 통제였다." 마지막으로 <鐵西區>에 대한 뤼신위1)의 영화 평론에 대해서도, “내 생각으로는 그건 뤼신위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그것은 그 사람이 쓴 것이고, 그렇게 보는 것은 그녀의 생각이지 나의 생각이 아니다. 나는 계급 같은 것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계급 같은 것은 없다. 누가 무슨 계급인지, 누가 무슨 계급이 아닌지, 그런 것은 마오쩌둥이 한 것이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저층(底層)이든 상층이든, 이 사람들을 이렇게 나누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저층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물어보고 싶다. 저층은 어디에 있고, 상층은 어디에 있나? 모두 같은 인간이고, 인간은 그냥 인간인 거지, 물질적 조건이 누가 상층이다 저층이다라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 저층개념이라는 표현은 바로 문제가 있는 거다. 마치 예전에 누가 지주고 누가 빈농(貧農)이라고 했던 것처럼”


왕빙의 위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의 톄시구는 대형국유기업이 차례로 도산하고, 노동자들도 하강하는 공간이었다. 둘째, 이 세상에서 계급이란 것은 없고, 계급의식도 없다. 셋째, 주체성을 상실한 인간을 낳은 것은 자유시장이 아니라 정부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계급이 없고, 계급의식도 없다."라는 것이 이 세계에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든지 인간들 사이에는 물질적 조건의 차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가 물질적 조건으로 사람들을 상층과 하층,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눠서는 안된다는 왕빙의 희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왕빙이 <鐵西區>을 통해서 만들어 내는 공간생산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공장이 도산되고, 노동자들이 하강하던 그 시대에 톄시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무력한 존재로서의 인간들일 뿐, 자본가계급과 상대하는 노동자계급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톄시구에는 마오쩌둥 시대와 같은 그런 계급은 존재하지 않고 하강당한 사람들만 존재한다. 또한 인간들이 주체성을 상실한 원인은 자본에 있지 않고 정부의 통제에 있는 것이다. 결국 마오쩌둥 시대 노동자계급의 공간이었던 톄시구를 주체성을 상실한 인간들의 거주지로 바꾼 것은 정부가 아니라 자유시장이라는 점이다.


_ 기업 소유제 개혁과 노동자 인식


그렇다면 1990년대 중 후반부터 서서히 시작되는 노후공업기지 국유기업의 소유제 개혁 상황과 그 소속 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공간생산에 대해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앞서 언급한 1995년 동북지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옌위안장(嚴元章)의 조사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Q. 질의

당신은 회사가 소유제 개혁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회사는 어떻게 소유제 개혁을 합니까? 그렇다면 소유제 개혁을 통해서 도달하려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 응답 -

노동자A

당신이 말하는 문제는 나로서는 좀 너무 큰 문제다. 당신하고는 서로 알고 지낸지 이미 꽤 시간이 되니까 당신과 얘기하는 것은 별로 신경 쓸 것이 없다. 하지만 말한 것을 모두 기록할거라면 난 좀 걱정된다. 나는 무슨 소유제 개혁을 하든 안 하든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거에 관심 가져서 우리 같은 서민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 정부 얘기가 너무 많아, 의미없어, 차라리 중국국가올림픽대표팀 상황에 관심 가지라고 하는 게 낫지. 이 문제는 내가 말하기는 좀 그러니 얘기 안 하면 안되나? 난 지도부가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하는 건도 정말 잘 몰라.

노동자B

당연하다. 개혁은 여러 사람의 마음이 지지하는 것이고 대세다. 국유 중대형기업이 개혁을 안 하면, 탈출구가 없다. 이건 또한 주룽지 총리로 대표되는 새 정부의 중대임무다. 우리 기업의 발전은 순조로울지 여부는 시장을 보면 된다. 생산품이 있어도 품질이 안 되면 안된다.

노동자C

솔직히 말하면, 기업 소유제 개혁을 하냐 안 하냐는 우리 노동자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노동자는 소유제 개혁을 하나 안 하나 모두 일해서 밥 먹고, 일 해서 월급 받는 거다. 소유제 개혁을 해서 간부 부패를 해결할 수 있고, 회사를 정말로 잘 되게 한다면, 그거야 말로 좋은 일이다. 만약 그 탐관(貪官)들에게 한 몫 크게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라면, 안 하느니 못하다.

Q. 질의

당신은 현재 회사가 진행하고 있는 소유제 개혁 조치 중에서, 어떤 것들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가? 찬성하지 않을 경우 당신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가? 노조와 직공대표대회는 그럴 경우 어떤 역할을 하는가?

- 응답 -

노동자A

찬성하고 찬성하지 않고가 우리 노동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른 의견은 나도 꺼내 놓을 수가 없고, 아무런 쓸모가 없다. 화만 초래하지. 노조와 직공대표대회가 우리더러 어떻게 얘기하게 하나? 한마디도 모두 위의 지도부 안배에 따라서 모두 다 하는 것이고, 모두 형식이고 얘기 하든 안 하든 모두 소용없다.

노동자B

당원(黨員)으로서 아랫사람은 윗사람에 복종하고, 당은 모두 중앙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원칙이다. 나는 조직에 내 개인의 생각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우선 지도부의 결정을 실행해야 하고, 동시에 노조에 건의를 할 수 있다.

노동자C

소유제 개혁 과정에서 노동자를 구속하는 관리제도가 너무 많은데, 간부들에 대한 구속력은 보이지 않는고, 노동자계급의 주도지위는 떨어졌다. 의견을 말하면, 당연히 직공대표대회 한마디 해야 하는데, 핵심은 얘기해봐야 무슨 소용있나? 지도부의 신경이라도 건드리면, 그걸로 널 괴롭힐 텐데? 지금 노동자에게 지위라는 게 있나? 할 일이 있고, 하강 안 당하면 그걸로 만족스러운 거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 주면 괜찮은 거다. 노조와 직공대표대회가 날 더러 얘기하라고 하는 건 그냥 하는 척만 하는 거다. 그 사람들도 지도부 의도대로 일 처리하는 것 아닌가? 사장들 뜻에 어긋나면 그 사람들도 바꿔버릴 거니까.


 


노동자들은 자신의 공장의 소유제 개혁에 직면하여, 그것이 자신의 지위와 생존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문제라는 것은 어렴풋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가 없고,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조와 직공대표대회도 소유제 개혁 과정에서 공장 당위원회와 지도부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력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기업 소유제 개혁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수 없고, 그 구체적인 상황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톄시구로 대표되는 동북 노후공업기지의 개조와 노동자에 대한 왕빙의 다큐멘터리 <鐵西區>의 공간생산에서 보이는 인식은 옌위안장의 조사에 나오는 노동자들이 기업 소유제 개혁에 대해서 가지고 인식과 대체로 유사한 듯하다. 노동자들은 "영도계급"에서 "영도되는 계급"으로 전락해버렸고, 이것은 2004년 초부터 본격화되는 동북진흥정책을 배경으로 톄시구 노후공업기지에 대한 본격적인 개혁이 실시되기 몇 년 전인 1999년 경부터 이미 선양을 비롯한 동북지역 전체에서 발생하고 있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에는 국가 주도의 일방적 공간생산으로 초래된 노동자 생존의 구체적인 상황과 "저항"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http://blog.rbc.cn/detail/168425.html

http://image.baidu.com/i?tn=redirect&ipn=rdt&word=j&juid=00E5A7&sign=cgbibecckb&url=http%3A%2F%2Fapp.1926cn.com%2Fbbs%2Fviewthread.php%3Ftid%3D13395

http://www.beihai365.com/bbs/viewthread.php?tid=111842

http://space.tv.cctv.com/act/article.jsp?articleid=arti1202109151858350

www.club.china.com

http://www.beihai365.com/bbs/viewthread.php?tid=111842



1) 푸단대학 교수 뤼신위(呂新雨)는 <讀書>에 "歷史與階級意識"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 <鐵西區>에 관한 영화평을 썼고, 이 영화평은 영어로 번역되어 서방세계에 <鐵西區>를 소개하는 하나의 표준적인 해설로 인식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