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로 보는 중국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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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중국 관행 웹진』에서는 2013년 1월부터 <이미지로 보는 중국> 칼럼을 기획하여 연재합니다. 인천대 HK사업단 및 소속 연구원들이 소장하고 있는 포스터, 사진, 그림 등의 각종 이미지 자료 중의 일부를 선정하여 설명과 함께 소개할 예정입니다. 다양한 이미지들에 내재되어 있는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의미를 함께 읽어 나감으로써 중국 일상의 여러 단편을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전통적 또는 혼종화된 공간으로서의 스차하이(什刹海) 후통(胡同)

장호준 _ 인천대학교 HK 교수


베이징에서 가장 ‘베이징다운’ 곳은 어디일까? 물론 ‘베이징다움’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이러한 식의 질문에 내재된 전형화(典型化)의 위험 때문에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잠시 제쳐두고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필자는 망설임 없이 스차하이(什刹海) 일대의 후통(胡同)을 꼽겠다. 이는 이 지역의 특성이 베이징을 가장 잘 반영한다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 일대에 농후하게 배어있다는 전통과 민간 문화의 구성적 성격이 베이징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다.



 스차하이는 베이징 시청취(西城區)에 있는 서로 연결된 세 개의 호수, 즉, 쳰하이(前海), 허우하이(后海), 시하이(西海)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 일대에 10개의 사찰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이 일대는 大金絲, 大石碑, 銀錠橋, 南官房, 煙袋斜街 후통 등을 포함하여 수십 개의 후통과 쑹칭링(宋慶齡) 고택, 그리고 恭王府, 慶王府 등 유명한 스허위안(四合院)이 잘 보존되어 있어 베이징의 옛 모습을 잘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여겨져 왔다. 이에 베이징시 정부는 1992년 이 지역을 ‘역사문화풍경구’로 지정하였고, 2000년에는 25개의 역사문화보호구역의 하나로 승격하여 관리하고 있다.



지금이야 베이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 중의 하나지만, 스차하이 일대의 후통이 베이징의 ‘전통’ 또는 ‘민간’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서의 지명도를 얻게 된 것은 다른 명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이다. 스차하이 후통의 문화적 위상이 변화하게 된 데는 사진작가였던 쉬용(徐勇)의 영향이 지대했다. 1)쉬용은 1980년대 후반 직접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의 후통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1990년 <胡同101像>이란 제목으로 사진집을 출판한 바 있는데, 이는 후통을 소재로 한 최초의 사진집으로 여겨진다. 쉬용이 찍은 후통 사진들은 중국인들보다는 외국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으며, 많은 외국인들의 요청에 따라 쉬용 자신이 직접 그들의 후통 관광을 안내하기도 했다고 한다.



베이징의 후통이 역사, 문화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있음을 깨닫게 된 쉬용은 1992년부터 후통 여행사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와 구청의 담당 관료들을 설득한 끝에 그는 1994년 후통 관광사업을 승인 받고 후통관광회사(胡同遊覽公司)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를 통해 스차하이 일대 후통을 유람한 관광객은 1995년 약 9천명에서 1998년에는 5만천 여명, 그리고 2001년에는 약 12만8천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차하이 일대의 후통을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외국인들이었다. 그것이 중국 ‘전통’에 대한 호기심, 아니면 사회주의 인민들의 일상에 대한 일종의 보여리즘(voyeurism)에서 비롯된 것이든지 간에,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스차하이 일대의 후통은 점점 의미심장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먼저, 후통 보호구역으로 설정하여 재정비하고자 하는 정부 차원의 행정적 조치가 보다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계획경제 시기를 거치면서 다자위안(大雜院)으로 변해 이미 슬럼화된 스허위안들이 철거되는가 하면,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스허위안 및 후통들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재정비가 이루어졌다. 즉, 일부 전통 및 민간 유산들의 전통성과 민간성이 부정되는 반면에 다른 일부의 그것들은 정부에 의해 ‘민간적인’ 것으로 선별되어 ‘새로운 전통적’ 형상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개발의 시대 여느 나라 또는 지역과 마찬가지로, 스차하이 일대의 후통 역시 콘크리트와 화학도료로 번듯하고 깔끔하게 새로 지어진 스허위안이 전통 가옥과 민간 공간으로 재현되어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중요한 변화는 스차하이 일대에서의 문화적 혼종화 경향에 관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외국 관광객이 급증하자 그들의 휴식처로 전통 건물의 일부를 변형하여 외국산 주류를 취급하는 주점(bar)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쳰하이(前海)와 인딩챠오(銀錠橋) 주변, 그리고 옌다이셰지에(煙袋斜街) 후통 등의 ‘전통(?)’ 건물에 나붙은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코로나의 광고판과 네온사인은 언젠가부터 또 다른 볼 거리를 제공하면서 베이징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쩌면, 전통적 생활 공간으로서의 후통 그 자체라기 보다는, 전통적 후통, 이국적 외국 관광객들과 주점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또 다른 혼성적 공간으로서의 스차하이일는지도 모른다.



가장 전통적이고 민간적인 장소로 일컬어지는 베이징 스차하이 일대 후통에는 확실히 ‘전통적’이고 ‘현대적’인 요소와 ‘민간적’이고 ‘이국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다. 오래된 지층에 서로 다른 시대의 암석과 토양들이 켜켜이 수직으로 쌓여 있는 것처럼, 베이징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스차하이 일대의 후통에는 명청대(明淸代)의 거주 공간으로서의 스허위안, 계획경제 시기의 사회주의적 이념이 공간적으로 발현된 다자위안, 개혁개방 이후 시장과 서구문화가 각인된 형태로서의 후통 주점 등,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들이 같은 시간 안에 수평적으로 산재되어 있다. 스차하이 일대 후통이 지니는 의미는 이렇게 다양한 범주의 요소들,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http://goo.gl/Mst6a, <中華圖片庫>, http://bato.cn, http://goo.gl/ti5dn, http://goo.gl/ti5dn, 이민주(인천대 HK사업단 연구코디네이터)


1) 베이징 후통 관광에 쉬용(徐勇)이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최경호 (2003), “오래된 집, 四合院의 매력과 관광자원화,” 『역사민속학』 제16호를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