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의 오늘 (4)    중·조 국경의 다층적 의미: 공유 혹은 경계

| 기획 | 동북의 오늘 (4)


인천대 HK사업단에서는 HK사업 2단계 기간(2012.09 ? 2015.08) 동안 중국의 동북 지역(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중점 연구 권역으로 설정하여 연구조사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중국관행웹진』은 동북 권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지역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동북의 오늘> 칼럼을 기획하여 2013년 1월부터 연재 중입니다. <동북의 오늘>에서는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는 전문가들의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체제의 확산과 심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일상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중·조 국경의 다층적 의미: 공유 혹은 경계*

강주원 _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_ 압록강과 중·조 국경에 대한 한국사회의 선입견: 경계


한국 사회에서 단동과 관련된 ‘압록강’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이성계의 위화도가 단동과 신의주를 사이에 두고 압록강에 있다. 또 『열하일기』에서 연암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너 소위 청나라 변경(국경)으로 간주되던 책문으로 향하는 160리의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손기정 선수가 신의주에서 단동으로 출근 겸 마라톤 연습을 하던 곳이라는 사실도 있다. 그리고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2008년에 SBS 드라마로 방송되었다. 이처럼 압록강은 사람들이 강변 양쪽을 넘나들던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압록강에 대한 강렬한 인식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압록강 다리 폭격의 상처가 담긴 한 장의 끊어진 다리의 사진 그리고 교과서 지도에서 보듯이 한 줄의 선으로 표시된 넘어갈 수 없는 국경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단동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은 현재의 압록강을 바라보면서 위화도, 열하일기, 손기정 등을 떠올리다가 결국에는 또 하나의 넘어갈 수 없는 국경 즉 휴전선의 이미지를 각인한 채 돌아간다.


한국 관광객은 압록강단교 위에서 하나의 퍼포먼스를 한다. 강 중앙이 국경이라는 관광 가이드의 안내와 함께, 국경의 형태를 하나의 선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들은 다리 중간을 지나는 순간 국경을 뛰어넘는 행위를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 순간 압록강의 한복판은 하나의 선으로 그어지고, 그곳이 바로 국경이 된다. 그러나 압록강의 중앙이 국경이라는 것은 관광 가이드의 이벤트 연출을 위한 왜곡된 설명과 중·조 국경 조약의 특징을 모르는 한국 관광객의 정보 결핍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결과 그들은 압록강의 폭 전체를 압축된 하나의 선으로 생각하는 통념을 강화한 채 한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중·조 국경 조약으로 인해, 압록강은 국경이자 북한과 중국의 공유지역이다.


_ 중·조 국경조약의 특징: 장벽이 아닌 공유로서의 국경


중·조 국경은 양 국가가 비공개 형식으로 체결한 것으로 알려진 1962년 10월의 “국경조약”과 “국경문제합의서” 그리고 1964년 3월 국경에 관한 “의정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 조약 내용에서 본 연구자가 주목하는 내용은 압록강의 공유(공동 관리 및 사용), 경계 팻말, 섬과 사주(砂洲) 등이다. 이 단어들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는 국경이 곧 선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국경과 관련된 압록강의 특색이 드러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중국은 압록강을 공유 및 공동 관리하고 양국의 사람들이 사용한다. 이것은 국경에 의해서 양국의 국경지역이 나누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양국이 함께 국경지역을 공유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동시내를 중심으로 예를 들어 본다면, 압록강에는 밀수에 이용되는 배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의 모래 채취선, 유람선, 순시선, 어선, 화물선 등이 공존한다. 2006년 이전에는 국경 표시보다는 압록강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비석이 단동시내 관광지들에 있었다. 사주(砂洲)는 국경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압록강의 본류가 흐르지 않는 국경지역이 존재함으로써 국경을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북한의 황금평이라는 섬에는 중·조 국경지역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2006년 이전만 해도 이곳에는 국경을 표시하는 어떤 것도 목격되지 않았다.


압록강을 공유하는 배들(2007) 양 국경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형(2007)


_ “등안(登岸)은 했지만 월경(越境)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압록강에는 국경이 없다”에 담긴 의미: 공유


압록강 바로 옆에 조선족 학교가 있던 1990년대 초, 조선족 학생들은 강 건너 신의주 강변까지 수영을 하였다. 그때를 회상하는 40대의 조선족은 신의주의 물가를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신의주에 살았던 30대의 북한화교는 수영을 하고 있으면, 단동의 외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와 자기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었던 추억을 말한다. 여름철이면 압록강에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단동과 신의주의 강변 양쪽에서 쉽게 목격된다. 단동사람은 “압록강에 스쿠버 다이버가 있다고 상상을 해보라”는 말을 한다. 물속에서 양쪽 사람들이 만날 수 있다고 농담을 한다. 중국 측 유람선들은 신의주 쪽 강변에 최대한 접근해서 운행을 한다. 북한의 국기가 펄럭이는 모래 채취선들은 신의주보다는 단동 강변 쪽에 가깝게 자리를 잡고 강바닥에서 모래를 퍼 올린다. 이런 풍경이 가능한 이유는 압록강이 두 나라의 공유지역이라는 중·조 국경 조약의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행위들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단동사람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양 국가는 압록강 너머 신의주(단동)에 발을 올려놓아도, 배에 손만 놓치지 않으면 국경을 침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등안(登岸)은 했지만 월경(越境)은 하지 않았다”라는 문구로 정리된다. 이 표현은 압록강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위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단동과 신의주 사이에는 양 국가의 국경이 있고, 양쪽의 강변에 서서 대화를 할 수 없는 압록강의 강폭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만나고 교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구는 압록강에서 펼쳐지는 교류와 공유 문화의 가능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동사람과 신의주사람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압록강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압록강은 양 국가를 연결하는 경제적 삶의 수단이 되고 있다. 단동사람의 삶의 영역은 국경으로 제한이나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경 너머의 북한사람과 교류하고 공유한다.


한편 단동사람은 압록강이 중·조 공동수역이기 때문에 홍수가 날 경우 강의 폭이 넓어지는 현상을 빗대어 “압록강에는 국경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 문구에는 압록강은 비록 국경이지만, 교류를 방해하는 국경의 의미가 없음을 함축하고 있다. 압록강은 양 국가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공유지역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단동과 신의주에는 국경이 있지만, 국경이라는 존재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 제약으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단동사람은 중·조 국경을 “국가 간에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선일뿐이다. 우리는 이웃과 친구로 지낸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일상적인 교류에 대해서, 북한과 중국 양쪽 모두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하지는 않았다. 국가의 시선으로 보면, 그들의 만남과 교류는 비공식적 혹은 불법의 잣대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만남과 교류는 국가의 잣대를 떠나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다.


_ 중국의 국경(경계) 만들기 강화:

  전쟁 역사 기념과 국경의 결합 그리고 변경이자 국경의 상징물 활용


한국 사람이 간과하는 단동의 특징이 있다. 중국 사람에게는 필수 관광 코스의 이유이자 배경이지만 한국 사람은 이를 주목하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내용이다. 그 문구는 압록강단교의 관광지 벽면에 새겨진 “전국 애국주의 교육 시범기지”이다. 이 내용은 중국의 과거와 현재의 국경(변경)과 관련된 단동의 건물들과 결합되어 있다. 단동에는 한국 사람의 관광 코스에 포함되지 않는 항미원조기념관이 있다. 다른 하나는 한국 사람에게 단지 중국의 역사왜곡의 현장으로 인식되는 기념물이 있다. 그곳은 중국에서 호산장성이자 만리장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불어 한 건축물에 대해서 중국사람과 한국사람 사이에 동상이몽의 양상을 보이는 역사물이 압록강변의 단동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압록강단교이다. 이들을 통해서, 단동은 중국에서 “전국 애국주의 교육 시범기지”로서의 위치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문구는 위의 장소들을 큰 틀에서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항미원조기념관, 만리장성, 압록강단교를 통해서, 단동은 중국의 애국주의 교육 시범기지의 역할을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고 있다.


압록강단교의 전쟁 역사 조형물(2007) 항미원조기념관(2007)


예를 들어, 2007년 현재 단동을 소개하는 책자에 첫 줄은 늘 “단동은 만리장성의 동단의 기점이다”라는 표현으로 시작을 한다. 호산장성을 소개하는 현지의 책자를 보면, 만리장성이라는 서술과 함께 현재의 국경을 강조하는 부분이 빠지지 않는다. 단동의 주요 관광지들이 북한 혹은 신의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호산장성은 역사 기념물이자 국경 너머 이국적인 풍경인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임을 강조한다. 오히려 북한과 관련된 국경을 언급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현재의 중·조 국경과 국경 너머 다른 나라의 국경지역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과거의 변경과 현재의 국경이 호산장성에 접목되고 있다. 단동은 중국 역사에서 변방의 상징물인 만리장성과 현재의 중국 영토 끝자락인 중·조 국경이 결합되는 곳이다. 때문에 중국의 역사 속의 변경 확대와 현재의 국경 인식 강화의 효과가 나타난다. 호산장성은 중국 사람에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변경 및 국경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문화적 자원의 역할을 한다. 호산장성에서는 중국의 역사 만들기와 국경 만들기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_ 경계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또 다른 국경들:

  압록강대로, 고층 아파트, 유람선


2006년 이전 단동에는 국경을 상징하는 철조망 또는 장벽이 없었다. 중국의 국경 경계 팻말은 단동시내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다만 드물게 설치한 中朝邊境(중조변경)의 문구가 적힌 비석만이 국경지역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하지만 2006년 압록강대로가 개통이 되면서, 한국전쟁 당시 중국 군대가 압록강을 도하했던 장소가 관광지로 꾸며지기 시작했다. 그곳은 이전에 압록강에서 빨래를 하기 위해 아주머니들이 이용하던 오솔길만 있었다. 2009년 압록강단교 주변에는 중·조 국경의 정식 경계 팻말 형식을 하고 있는 비석이 세워졌다. 항미원조전쟁의 영웅 공군의 동상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즉 국경과 관련된 요소들이 압록강공원에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단동의 변화는 2006년을 기점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단동사람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국경이 존재하고 국경지역임을 인식하게 하는 풍경들을 목격하고 있다. 이 시기에 단동의 압록강변에 철조망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설치된 철조망들은 압록강의 지형 때문에 중·조 국경이 구분이 쉽지 않는 곳들에 세워졌다. 탈북자 방지를 위한 것으로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내용과는 달리, 철조망 설치는 양 국민의 교류의 삶을 막기 위한 목적보다는 중국 영토의 끝자락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철조망뿐만 아니라 국경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사람들이 국경으로 나누어진다고 인식하지 못하던 곳 또는 북한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지역들이 점점 더 양국민이 만날 수 없는 국경지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압록강대로에는 철조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동시내와 단동신시가지의 압록강대로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이어지면서 철조망이 담당하는 경계의 의미를 대신하고 있다. 압록강대로와 고층아파트는 중·조 국경에 경계의 의미를 덧붙이고 있다. 이 도로의 행선지는 단동시내의 중심에 있는 압록강단교가 있는 압록강공원으로 향하고, 이어서 호산장성으로 이어진다. 그 이후에도 압록강대로는 압록강 상류로 끊임없이 건설되고 있다. 중국의 두만강변에도 이러한 도로들은 개통되고 있다. 간혹 가파른 강변에 조성 중인 압록강대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10미터 정도의 절벽 위를 달린다. 이를 놓고, 한국 방송은 중국이 탈북자 단속을 위해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고 보도를 한다.


단동 20-30층 아파트 건설 붐(2007) 압록강대로와 철조망(2007)


한편, 압록강의 지형을 이용하는 국경 관광 역시 또 하나의 국경 역할을 하고 있다. 단동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은 “일보과(一步跨)”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곳이다. 일보과는 중·조 국경 조약에서 압록강을 공유한다는 내용, 중국 배가 북한 땅에 접안을 해도 불법은 아니라는 점, 양 강변에 철조망이 설치된 관계로 국경을 넘나들기 한다는 느낌과 국경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 사전에 약속 혹은 관례를 이용한 중국 사공과 북한 군인의 대화 장면과 선물 주기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국경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2011년 압록강에 새로운 유람선 선착장이 단동시내 외곽에 생겼고 활성화되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 관광객은 중·조 국경을 넘나들기 했다고 믿게 되는 체험을 한다. 그들은 압록강대로 옆 철조망을 통과해서 강가에 있는 선착장으로 내려간다. 보트에 탑승하면, 조선족 관광 가이드는 한국 관광객에게 “지금부터 여러분은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실 것입니다”라는 안내를 한다. 그 순간 보트는 일보과보다 상류에 위치한 압록강변을 출발한다. 속도를 내기 시작한 보트는 순식간에 북한쪽 강변에 접근을 한다. 북한사람들이 강변에 나와 있는 모습을 불과 10미터 내외에서 본 한국 관광객은 자신이 국경 근처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한다. 5분을 그렇게 달리던 보트는 방향을 바꾸어, 오던 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중국 땅으로 예상했던 그들은 육지에서 다시 북한 사람이 다시 보이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이때 조선족 가이드는 “여러분들은 지금 국경을 넘어 북한 영토에 들어와 있습니다. 북한쪽하고 계약을 했으니까, 걱정을 하지 마세요. 한국말만 하지 않으면 일 없습니다(문제가 없습니다)”라고 한마디 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호산장성 옆 일보과의 나룻배가 일정 부분 담당하던 것이다. 하지만 일보과의 유람선은 양쪽에 철조망이 생기면서 국경 넘나들기 체험의 성격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동사람은 일보과 관광지의 특징을 대체할 수 있는 관광지를 만든 것이다. 또한 일보과에 비해서, 이곳은 압록강 양쪽이 북한의 땅으로 되어 있다는 관광 코스의 장점이 있다. 한편 한국 관광객이 이 관광 코스에서 체험한 국경 넘나들기는 사실이 아니다. 중·조 국경 조약 때문에 다수의 섬들이 북한 소유이며, 압록강은 선으로 국경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구역이다. 중·조 국경의 특징들을 한국 관광객들이 정확하게 인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관광 가이드가 이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말만 하지 않으면 일 없습니다”라는 가이드의 마지막 말은 한국 관광객들에게 중·조 국경은 한국 사람에게 넘나들기가 허락되지 않는 경계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 결과 단동의 국경 관광지는 철조망이 없는 국경지역에 양 국가를 구분하는 국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압록강 양쪽으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유람선 코스 1(2011)
압록강 양쪽으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유람선 코스 2(2011)




* 이 글은 『역사문화연구』 45집에 수록된 “중·조 국경의 다층적 의미: 역사 속의 변경 확대와 현재의 국경 강화” 가운데 일부분을 발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