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초 유럽 '국가별 특성' 만들기 열풍

설혜심 _ 연세대학교 사학과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서양역사학의 강력한 화두로 자리 잡은 지 이십여 년이 흘렀다. 정체성이란 미시적 차원에서 한 개인의 정체성으로부터 거시적으로는 ‘민족성’이나 ‘국민성’과 같은 집단 정체성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것이다.


1944년 한스 콘(Hans Kohn)이 『민족주의』(The Idea of Nationalism)를 출간한 이래로 많은 학자들은 국민적 정체성이 ‘타자의 설정과 배제’라는 틀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음을 주시해 왔다.1) 1992년 린다 콜리(Linda Colley)는 영국에서 나타난 국민 정체성의 기원과 형성과정을 분석한 저서를 내어놓았는데, 18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100여년 사이에 영국의 국민정체성이 프랑스라는 타자를 설정하고 그것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조형된 것임을 주장했다.2) 한편, 폴 랭포드(Paul Langford)의 『영국성(2000)』(Englishness Identified: Manners and Character 1650-1850)은3)는 거꾸로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영국의 국민적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영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것으로 별 의미가 없던 것일지라도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고귀한 것들이 있었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영국인들에게도 그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국민적 정체성이라는 화두에 있어 랭포드가 주목하는 것은 매너나 기질과 같은 ‘국민성(National Character)'으로, 그는 이것이 18세기 이후에 분명히 드러난다고 본다. 콜리와 마찬가지로 영국성이라는 것을 18세기 이후에 생산된, 이른바 근대적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랭포드는 “국민성은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고안품이다. 누가 정의하든 간에 이는 결국 대표될만한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선별되고, 바뀌며, 억압된 무엇에 불과하다”4)라고 말한다. 이런 국민성이라는 것은 다분히 심리(심성)적인 것과 연결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구, 땅, 역사, 혹은 특정한 관습, 혹은 사람들과 연결되기도 한다.5)


사실 영국뿐만 아니라 18세기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특정 국가의 ‘국민성’을 도출해 내고자 하는 열풍이 불었고, 그 움직임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 담론의 영역에서 특정 국가의 ‘매너와 관습(manners and customs)’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다양한 출판물이 홍수를 이루었다. 다음은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의 목록이다.


저 자

제 목

Le F?vre de Morsan

The manners and customs of the Romans (1740)

William Smith

A new voyage to Guinea (1745)

Samuel Sharp

Letters from Italy, describing the customs and manners of that country, in the years 1765, and 1766.  1767

Giuseppe Marco Antonio Baretti

An account of the manners and customs of Italy: with observations on the mistakes of some travellers, with regard to that country (1768)

James Porter

Observations on the Religion, Law, Government and Manners of the Turks (1768)

Paul Henri Mallet

Northern antiquities: or, A description of the manners, customs, religion and laws of the ancient Danes (1770)

Joseph Strutt

Honda Angel-Cynnam, or A compleat view of the Manners, Customs, Arms, Habits, &c. of the inhabitants of England (1775)

Anne Miller

Letters from Italy, Describing the Manners, Custom, Antiquities, Paintings, &c. of that Country, in the Years MDCCIXX and MDCCLXXI (1776)

Alexander Thomson

Memoirs of a Pythagorean: In which are delineated the manners, customs, genuis, and polity of ancient nations (1785)

Louis de Ch?nier

The present state of the empire of Morocco (1788)

Claude Fleury,

Adam Clarke

The manners of the ancient Israelites (1805)

James Peller Malcolm

Anecdotes of the manners and customs of London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1810)

Sir Richard Phillips

A general view of the manners, customs and curiosities of nations (1810)

James Peller Malcolm

Anecdotes of the manners and customs of London from the Roman invasion to the Year 1700 (1811)

Thomas Dew

An account of Tunis: of its government, manners, customs, and antiquities (1811)

Sir Richard Phillips,

James Gates Percival

A geographical view of the world: embracing the manners, customs, and pursuits of every nation (1826)

Johann Ludwig Burckhardt

Arabic proverbs or the manners and customs of the modern Egyptians (1830)

James Atkinson

Customs and Manners of the Women of Persia and Their Domestic Superstitions (1832)

Charles Rollin

The Ancient History of the Egyptians, Carthaginians, Assyrians, Babylonians, Medes and Persians, Grecians, and Macedonians (1836)

Alexander Adam

Roman antiquities: or, An account of the manners and customs of the Romans (1839)

anonymous

The manners and customs of the Jews and other nations mentioned in the Bible (1841)

Sir John Gardner Wilkinson

A second series of the Manners and customs of the ancient Egyptians (1841)

Anon

The Jewish nation, containing an account of their manners and customs (1848)

Thomas Dew

Digest of the Laws, Custom, Manners, and Institutions of the Ancient and Modern Nation (1852)

Edward Shortland

Traditions and superstitions of the New Zealanders (1856)

George Catlin

Letters and notes on the manners, customs, and conditions of the North American Indians (1857)

Edward William Lane

An account of the manners and customs of the modern Egyptians: written in Egypt During the Years 1833-34, and 35 (1860)

Jean Antoine Dubois

A description of the character, manners and customs of the people   of India (1862)

Ishuree Dass

Domestic manners and customs of the Hindoos of northern India, or, more strictly speaking of the north west provinces of India (1866)

Jacob Mortimer Wier Silver

Sketches of Japanese Manners and Customs (1867)

William King Tweedie

Eastern manners and customs (1870)

N. A. McDonald

Siam: its government, manners, customs, &c (1871)

Eugene O'Curry

On the Manners and Customs of the Ancient Irish (1873)


이들 목록에서 흥미로운 점은 18-19세기 유럽에서의 국민성, 혹은 국가의 습속에 대한 탐구가 유럽이라는 경계를 넘어 이집트나 터키, 인도, 일본 등 먼 나라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당대의 국가에 그치지 않고 고대 국가의 관습까지 알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유럽에서 국민성에 대한 탐구와 비교가 갑자기 많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그런 움직임을 주도한 나라가 영국이었다는 사실이다. 16세기 영국은 로마의 영향에서 벗어난 중앙집권적 국가를 추구하며 군주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국민 의식(national consciousness)을 고양해 갔다. 그것은 군주와 백성들 사이의 수직적 관계를 기본 틀로 설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국민의식이 단순히 군주(혹은 땅)를 향한 애착을 벗어나 다른 형태로 퍼져나가게 된다.6)


가장 먼저 문학계는 고전을 찬미하는 엘리트 문화와는 다른 형태로 영국의 문화, 지리, 사람들의 특성 등을 찬양하는 작품들을 출판하면서 자신들을 그려내는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민족(혹은 국가)와의 비교가 동원되었다. 다니엘 디포는 「진정한 영국인(1700)」(the True-Born Englishman)에서 영국인이 수많은 다양한 줄기의 선조들의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쓰면서, 인류 여러 민족의 특징을 열거한다.


피터 맨들러(Peter Mandler)와 같은 학자가 지적했듯이 “사실 영국이야말로 다른 나라들이 ‘국민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낼 물꼬를 터 준 나라”였다. 왜냐하면 바로 사회(society)라는 개념이 영국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사회란 국가와는 차별적인 것으로 그 자체로 독립성을 지니고 있으며 개인이 자신을 자각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준거틀이었다. 여기서 ‘영국 사회’에 대한 개념의 정의는 자연스럽게 과거 군주와의 관계를 통해 규정지어진 ‘백성’과는 다른 ‘영국인(English People)’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켰고, 자신들이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분석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맥락에서 볼 때 국민성에 대한 구체적이고 발달된 형태의 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더 평등적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국민성 비교를 가속화시킨 것은 사람들의 교류였다. 18세기는 ‘그랜드 투어’의 시대로 수많은 영국 여행자들이 대륙으로 여행을 떠났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르네상스를 꽃피웠다고 하지만 아직도 영국은 문화적으로 후진국이었다. 하지만 17세 후반부터 찾아온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는 영국 사람들에게 문화적 열등감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찬란한 그리스-로마 문명을 간직한 이탈리아, 화려한 궁정문화를 꽃피운 프랑스를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수많은 영국 젊은이들은 도버해협을 건너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머지않아 그랜드 투어는 범 유럽적인 현상이 되어 영국인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나라 귀족들도 자기 나름의 그랜드 투어를 실행하게 될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기 여행과 교육을 결합시킨 정교한 교육방법론이 탄생하면서 학생들은 보고 배운 것들을 상세히 기록하기 시작했고, 해외문물을 직접 경험한 이들은 나라별, 지역별 차이에 대해 수많은 담론을 생산해 내었다. 출판시장의 활성화에 힘입어 여행기가 가장 인기 있는 읽을거리로 등장하면서 각국별 국민성 비교는 18세기 유럽의 중요한 독서소재가 되기에 이르렀다.


교통이 발달하고 여행자가 늘어나고 유럽 내의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면서 이른바 ‘계몽사상가’들은 다른 환경에 놓인 다양한 인간의 사회를 관찰하며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몽테스키외에 의해 국민성(national character)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주의적 발언이 등장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1748)』에서 기후와 풍광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육(법, 종교, customs, manners)가 사회의 성격을 특징짓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7) 몽테스키외는 무엇이 ‘nation’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규명하지는 않았지만 인간 사회의 단위를 유럽, 중국, 스파르타, 터키, 유대인 등으로 구분했다.


이후 많은 이들이 몽테스키외를 따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18세기 후반에는 프랑스 혁명에 따른 갈등으로 인해 더 많은 국민성 비교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이 분야의 선구자들은 혁명을 일으킨 프랑스인과 그렇지 못한 독일인의 결정적 차이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유럽 내의 국가들은 좀 더 분명하게 국가 단위별로 특이성이 비교되었지만 먼 나라의 경우 지역별로 경계가 분명치 않게 뭉뚱그려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나아가 탐험을 통해 기존에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문명권(터키, 중국, 인도, 일본 등)과는 또 다른 낯선 지역을 발견하고는 그곳을 ‘열대’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내용이나 심지어 황당하기까지 한 내용이 많지만 당시 유럽에서 각 나라의 국민적 특성이라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주제였다. 많은 학자들은 국가별 ‘관습과 매너’를 진지하게 탐구했고 어떤 여행안내서는 각 나라별 국민성을 정리한 표를 제공하여 여행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지침’을 주려고 하였다. 그 가운데 몇 개를 예로 들자면 아래와 같다.8)


행동(behavior)

옷차림

- 프랑스인은 조심스럽다

- 스페인 사람들은 권위적이다

- 이탈리아 사람들은 애교스럽다

- 독일 사람들은 광대 같다

- 프랑스인은 변덕스럽고 계속 갈아입는다

- 스페인 사람들은 점잖다

- 이탈리아 사람들은 거지같다

- 독일 사람들은 봐 줄 수가 없다


대화(conversation)

게임(gaming)

- 프랑스인은 활기차다

- 스페인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킨다

- 이탈리아인은 호응한다(순종적이다)

- 독일인들은 불쾌하다.

- 프랑스인은 뭐든지 다 해본다

- 스페인인은 별로 좋지 않은 게임을 좋은 구경거리로 만든다

- 이탈리아인들은 하다가 화를 낸다

- 독일인들은 때때로 속아 넘어간다


법(law)

pride (자긍심)

- 프랑스는 좋은 법이 있으나 아무도 지키지 않는다

- 스페인은 훌륭한 법이 있고 매우 엄히 준수한다

- 이탈리아는 좋은 법이 있으나 지키게 할 방도가 없다

- 독일은 법이 있기는 하나 그저 그런 법이다.

- 프랑스인은 아무거나 칭찬한다

- 스페인인은 자기 자신만 칭찬한다

- 이탈리아인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것을 무시한다

- 독일인은 자랑할 줄 모른다


그런데, 유럽 안에서 불어 닥친 국민성 비교 열풍은 모순적이게도 ‘통합적 유럽’에 대한 구상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18세기 초반부터 프랑스 혁명 발발까지는 사실 아주 짧지만 화려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시대였다. 제럴드 뉴먼(Gerald Newman)이 지적했듯 18세기 중반 유럽 사회에 나타나는 중요한 변화는 전 유럽의 상층 계급에서 나타나는 지적, 문화적 통합이었다. 강력한 가문끼리 결혼을 통해 외국태생의 지배자들이 많이 생기게 된 것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영국, 스웨덴, 폴란드의 독일 왕들, 나폴리의 스페인 왕, 토스카나의 프랑스 공, 독일 공주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 모두 외국 출신의 왕이었다. 또한 영국의 그랜드 투어리스트,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의 지식인은 넓은 세상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다.


유럽문화에서 지적 통합이란 계몽사상가들이 제시한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과 자연의 법칙성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적인 신념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봉건적이고 농업적인 세계를 지배하던 과거에 대한 공통된 기억이 그들을 심리적으로 결속시켰고, 또한 교통통신과 여행의 폭이 확대되면서 상층계급의 문화적인 소양, 취미, 소비 형태까지도 동일화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한 통합의 중심지가 바로 프랑스였고, 루이 14세 시대에 절정을 이룬 궁중 문화와 계몽사상의 근원지로서 파리는 유럽 각국의 상층계급의 문화생활을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9)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곧 그에 따른 반작용을 수반하게 된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은 본질적으로 엘리트의 정서였다. 사실 그랜드 투어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18세기 중후반에는 모든 나라에서 일상 대화에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를 몇 마디 섞어 쓰는 것이 품위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독일이나 러시아의 귀족 계급은 해외문화에 대한 동경이 영국보다 훨씬 더 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의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말하고 프랑스 의상을 걸쳤으며 프랑스 가구에 걸터앉아 프랑스 하인을 거느렸다. 이런 모습은 계급 간에 갈등을 부추길 수밖에 없었고, 독일에서는 민족주의 성향의 부르주아 계급이 이에 반발하여 ‘게르만적 관습’이라는 문화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10)


뉴먼은 이런 현상을 귀족이 느끼던 박탈감을 통해 상세히 짚어낸 바 있다.11) 18세기 영국 귀족들이 프랑스 문화에 매료되었던 것은 프랑스 문화가 가지고 있는 심미적인 매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확산으로 중간계급의 경제력이 성장하고, 귀족이 지배하던 온정주의적 사회관계가 약화되면서 귀족의 권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귀족은 중간계급이나 서민과는 다른 생활방식과 소비생활을 과시함으로써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고, 귀족의 문화생활을 부르주아가 모방하자 또 다른 형태의 문화, 소비활동을 통해 그들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 이전까지 귀족의 후원에 의존하고 있던 영국의 예술가, 지식인들이 고충을 겪게 되었고, 그들은 개인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민적 굴욕으로 그 과정을 받아들이며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12)


이제 프랑스 문화로 대표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유포하고 수입하는 귀족들에 대한 비판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18세기 중엽부터 영국의 부르주아 식자들은 귀족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영국적인 것을 제시하려고 했고, 그 노력은 한마디로 진실성(sincerity)에 대한 추구였다. 이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고, 순진함, 정직, 독창성, 솔직함, 도덕적 독립과 같은 자질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듯 18세기 중반에 나타난 영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관념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전제하는 것으로 차츰 영국인은 개인주의, 자유 등으로 대표되는 국민성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18세기 후반 영국이 경제적, 국제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러한 성공의 결정적 요인을 국민성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이러한 대중적 국민주의에 편승하여 영국을 의인화한 존 불(John Bull)이라는 내셔널 캐릭터(national character, 이미지)가 나타나게 된다. 이미지로 표현되는 내셔널 캐릭터는 국민의식(national consciousness)을 나타내는 수많은 형태 가운데 하나로, 가장 구체적인 것으로, 가장 집중적이면서도 가장 두드러진 형태의 하나로 꼽힌다.13)


그 이전에도 영국의 내셔널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다수 생산되었다. 특히 엘리자베스 시대에 수많은 여왕의 초상화(그리고 그 초상화를 인쇄하여 보급함으로써)는 노골적으로 영국이라는 공간과 여왕의 모습을 결합시킴으로써 국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창출해 냈다. 폭풍우나 번개와 같은 외압의 상징을 막아선 당당한 자태며, 총신의 출신지를 딛고 서 있는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왕의 모습은 로마나 스페인에 맞서야 했던 영국의 상황, 그리고 단호한 통치자의 의지를 매우 효과적으로 그려내었다. 하지만 존 불은 그런 우아하고 당당한 여왕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속물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평범한 영국인의 특성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14)


빅토리아 시대(19세기)가 되면 영국의 국민성은 크게 세 가지 큰 틀을 갖추게 된다. 1. 17세기 영국 혁명과 명예혁명을 통해 획득한 정치적 자유, 2. 개신교 신앙에 근거한 선민의식, 3. 중간계급의 상업적 성공과 부상이 그것이다.15) 국가의 간섭이 증가하는 시기에는 자조(self-reliance),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자기존중(self-respect) 등의 개념이 국민성의 중요한 요소로 편입되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독일과 일본을 의식하면서 평범한 사람(Little Man)이 영국 국민성의 특징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즉 평범한 영국인은 독재자와 대립쌍을 이루며, 독재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양차대전이 끝난 뒤 영국의 국민성은 친절하고, 젠틀하고 참을성 많은 사람으로 제시되었고, 이후에는 정치와 복지정책에 있어 중도의 길(middle way)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개념이 전파되었다. 반면 예전 국가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운 영국인이라는 ‘자유’에 대한 전통적 관념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국민성 연구 분야는 미국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미국 학계는 과거 영국이 가졌던 예외주의를 자기 나라에 적용하고자 부지런히 여러 나라의 독특한 국민성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국민성에 대한 탐구와 고찰은 주로 국가가 팽창할 때 많이 연구된다는 맨들러의 주장은 이런 현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16)



설명: 엘리자베스 여왕을 그린 <디칠리 초상화(1592)> (The Ditchley Portrait). 여왕은 크리스토퍼 색스톤이 그린 <영국전도>를 밟고 서서 영국 땅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여왕의 발끝이 닿아있는 곳은 여왕의 총신 헨리 리 경(Sir Henry Lee, 1533-1611)이 저택이 있던 고장의 이름으로, 초상화가 걸려 있었던 곳이다. 여왕의 발은 리의 고향인 옥스퍼드셔에 닿아 있는데, 이것은 그림을 의뢰한 사람의 출신지역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 사람의 충성심을 통해 궁극적으로 국가의 중추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세우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설명: 영국을 의인화한 캐릭터인 존 불(John Bull)이 노예제 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을 풍자한 삽화. 18세기 후반부터 존 불은 뚱뚱하고 무뚝뚝한 평범한 영국 남성의 모습을 통해 영국인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1) Hans Kohn, The Idea of Nationalism: A Study in its Origins and Background (New York, 1944), pp. 10-11.


2) Linda Colley, Britons: Forging the Nation, 1708-1837 (New Haven, 1992).


3) Paul Langford, Englishness Identified: Manners and Character 1650-1850 (Oxford, 2000).


4) Langford, Englishness Identified, p. 14.


5) Peter Mandler, The English National Character (New Haven, 2006), p. 4.


6) Mandler, English National Character , p. 11.


7) Mandler, English National Character, pp. 19-20.


8) Jean Gailhard, A Treatise concerning the Education of Youth. The Second Part. About their Breeding Abroad (London, 1678), pp. 178-182.


9) Gerald Newman, The Rise of English Nationalism (New York, 1997).


10) J. H. 플럼(Plumb), 「18세기 유럽의 그랜드 투어」, 윌리엄 레너드 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푸른역사, 2004). p. 190.


11) Newman, Rise of English Nationalism.


12) 김대륜, 「18세기 영국에서 국민, 민족주의, 제국」, 『영국연구』 3호 (1999), pp. 196-197.


13) Mandler, English National Character, p. 7.


14) 박지향,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문화로 읽는 영국인의 자화상』 (기파랑, 2006), p. 20.


15) 박지향,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pp. 37-38.


16) Mandler, English National Character, p.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