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의 오늘 (3)    삼국(북한, 중국, 한국)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중국 단동

| 기획 | 동북의 오늘 (3)


인천대 HK사업단에서는 HK사업 2단계 기간(2012.09 ? 2015.08) 동안 중국의 동북 지역(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중점 연구 권역으로 설정하여 연구조사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중국관행웹진』은 동북 권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하고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 지역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동북의 오늘> 칼럼을 기획하여 2013년 1월부터 연재 중입니다. <동북의 오늘>에서는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는 전문가들의 현지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체제의 확산과 심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일상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삼국(북한, 중국, 한국)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중국 단동1)

강주원 _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_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로서의 단동:

  과연 미래의 꿈인가? 혹은 현실인가?


한국 연구자와 언론들이 집중하는 단동의 역할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즉 북한이라는 변수와 그 이후의 북한·중국·한국의 만남을 예견하고 진단한다. 이러한 논의들 가운데에는 한편으로 삼국 무역의 연결고리로서의 단동을 잘 포착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단동의 현실과 현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단동에서 한국으로의 수출이 상당 부분 중국의 중계 무역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담당하는  북한화교의 존재와 역할 등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들은 단동을 중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과 중국 간 무역의  지리적 중심지로서만 간주할 뿐, 이 서로 다른 집단들이 서로 함께 연결되는 되는 것은 단동의 머나먼 미래에나 있을 수 있는 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설문조사와 국경 무역에 종사하는 중국업체들에 대한 인터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연구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즉,  삼국 모두가 관련되거나 연결되어 있는 국경무역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거나 또는 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단동과 관련된 중국 측 무역 역사와 무역 통계 자료들을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단동의 국경 무역 통계에는 보이는 내용 못지 않게 보이지 않는 내용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_ 삼국(북한·중국·한국) 만남과 연결의 무대:

  단동 국경지역의 변화상 주목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네 집단은 단동에서 삶의 궤적을 만들어왔고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0년대 초부터 형성된 삼국 만남의 무대이자 현장으로서 단동의 국경지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조우의교를 통해서 중국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트럭에만 주목하지 않고, 이 다리를 등지고 단동의 국경지역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것이 요구된다. 먼저 단동의 상점이라는 공간에서 누가 팔고 있고, 누가 구매를 하는지 그리고 그 물건들은 어떻게 그곳에 오고, 어디로 팔려 가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삼국의 연결점이 되는 단동 국경지역의 변화를 이해하는 단초이다. 단동에는 중국과 한국 제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 무역회사들이 주축이 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출입상품 전람회”가 열리곤 한다. 단동의 국경지역은 삼국의 다양한 물건들이 모이고, 다시 삼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이다. 이런 유통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삼국을 대표하는 국기들의 경로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단동 거리에서 삼국 국기들의 역할은 판매되는 물품과 판매자의 전략을 상징한다. 다양한 가게들의 진열대 앞 또는 상점의 간판에 북한, 중국, 한국의 국기들이 함께 꽂혀 있거나 혹은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 가게의 물건들이 삼국의 고객들을 모두 상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은 삼국의 물건들 가운데 북한의 농수산물, 중국의 옥제품, 한국의 식료품 등이 대표적이다. 삼국의 국기가 식당 내부 장식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 경우, 단동사람은 식당의 메뉴판에 삼국을 대표하는 요리들이 있다고 판단한다. 식당 사장이 삼국의 손님을 주 고객으로 상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기뿐만 아니라 삼국의 도시 명칭 사용 역시 삼국이 서로 연결하고 있음을 대변한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택배 회사의 유리창에는 삼국의 국기 혹은 지명이 삼각형으로 배치되어있다. 이것은 단동-평양-서울 즉 삼국 간의 택배가 가능함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택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과 중국 또는 중국과 한국을 왕래하는 보따리 장사꾼, 특히 북한과 중국 사이에서는 국제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조 국경 무역을 담당하고 있는 버스와 트럭 운전수들이 소량의 물건, 서류, 편지를 평양에서 단동을 경유해서 서울로 혹은 역으로 한국에서 북한으로 전달하는 일에 동참을 한다. 이처럼 단동에는 삼국을 연결하는 인편이 발달해 있다.  


이런 일을 가능케 해주는 중심에 중조우의교와 단동페리가 있다. 중조우의교가 북한과 중국의 국경만을 연결하고 양 국가만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 위해서는 이 다리가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면 된다. 이 다리는 북한쪽으로는 신의주와 평양, 중국쪽으로는 대련(324㎞), 심양(240㎞)이 고속도로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대련(1시간)과 심양(1시간 40분)은 한국의 인천공항과 연결되어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단동과 대련·심양 사이에 고속철도가 완공될 예정이다. 2012년, 단동의 공항은 국제공항으로 변모하기 위한 확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또한, 중조우의교에서 단동시에 속한 중국의 국제 항구인 단동항까지 가는 데는 차로 40분(약 40㎞)이면 충분하다. 2011년 초 기공식을 한 압록강대교의 경우, 단동항까지 차로 25분(약 25㎞)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건설되고 있다. 이 항구와 한국의 인천항은 오후 다섯 시에 배를 타면, 중국과 한국에서 각각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노선(245해리)이 존재한다. 1998년부터 매주 2-3번씩 왕복하면서 최대인원 600명과 화물 110톤을 실어 나르던 단동 페리는 2011년 약 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승선할 수 있는 배로 바뀌었다(매주 3회 출항, 월수금 한국 출항, 화목일 중국 출항). 이 배를 운항하는 회사는 매달 10일 간격으로 단동-신의주 혹은 남포를 오고가면서, 주로 국경을 넘나드는 즉 과경 운송을 담당하는 선박 노선도 영업을 하고 있다. 2012년 단동에서 남포로 가는 화물선에는 약 백만 불 가치의 비료, 굴삭기, 가전제품 등이 실려 운송되곤 했다. 2011년에 단동과 남포를 오고간 이 회사의 항차는 약 30번이다. 단동항은 한국에서 북한으로 보내는 구호물자를 선적한 배, 단동-인천을 주 2회 왕복하는 화물선(컨테이너선박), 단동-평택항을 부정기적으로 오고 가는 화물선도 정박한다. 그리고 단동 페리가 정박하는 바로 옆은 북한 국적의 배들이 하역(荷役)작업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단동페리(2011) 동항에 정박한 북한 국적의 배(2007)


_ 삼국이 참여할 수 있는 조건과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


단동에서 실천되고 있는 국경 무역에는 북한과 중국만의 무역이 아닌 한국을 포함한 삼국의 연결고리 혹은 삼국의 무역이 만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경제적 관계는 중·조 무역과 남·북 경협(무역)이라는 각각의 장에서 이루어진다고 인식된다. 대부분 중·조 무역은 단동에서, 남·북 경협은 평양, 개성, 금강산이라는 무대로 국한시켜 이해한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국경을 두고 나누어지는 두 무역의 장을 북한에 대한 경제 주도권 경쟁 또는 선점 경쟁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자들은 넓게는 중·조 무역, 좁게는 중·조 국경 무역의 현황을 설명한다.


이러한 분석들은 단동의 국경 무역에서 삼국이 참여할 수 있는 조건과 현실을 놓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첫째, 소비재, 원자재, 설비의 대부분이 중국산인지, 둘째, 중국 업체들이 주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셋째, 외국기업들은 누구이고 중간거래자의 역할에서 한 축은 누구인지, 넷째, 북한의 임가공사업의 확대의 원인을 중·조 경제 관계에서만 분석할 수 있는지, 다섯째, 북한의 수산물과 농산물의 최종 도착지는 어디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요약하자면, 국경 무역의 장에서 어떤 상황에서 국경이 만들어지고 있고, 허물어지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이 가운데 두 가지 사례만 언급하겠다.


_ 의류의 원산지보다 삼국이 연결된 유통의 흐름 파악


단동에서 북한으로 수출 또는 반입되는 물건의 원산지와 유통 흐름을 짚어 보아야 한다. 단동에는 한국사람이 사장 혹은 북한사람이 노동자로 일하는 봉제공장들이 산재해 있다. 간혹 북한에서 제작된 의류들이 최종적으로 단동의 중국 회사에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의류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중국이 원산지가 된다. 따라서 이런 방식들을 통해서 단동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이 한국에서 소비되다가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 소위 땡처리 되는 의류와 제품들이 액면가가 아닌 무게를 달아 다시 중국으로 재수출되는 사례들이 있다. 이 때, 단동에서 이것을 구입하는 주 고객들 중에 북한사람도 있다.


이 과정에서 무역을 구성하는 주체들 중의 한 축은 북한사람과 한국사람이다. 그러나 물건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물건들은 대부분의 생산 공정을 북한에서 마친 것들이다. 그러나 북한에 있는 북한사람들은 이것을 중국산으로 인식하고 소비를 한다. 나아가 탈북자는 한국의 연구자들과 언론에게 “자신들은 중국산을 소비했다”고 진술한다. 이러한 물건에는 국경 즉 국적이 표시되어 있지만, 그 물건을 생산·유통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국경은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오히려 물건의 가격이 국경을 통과하는 이유가 된다.


위의 사례와 더불어, 단동사람은 원산지와 관련된 국경을 허무는 방식을 알고 있다. 한국 제품들이 기본적으로 북한에서 통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중·조 국경 무역의 장에서는 “MADE IN KOREA”라는 표시에서 최소한 “KOREA”를 지우면 기본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07년 대북 무역의 한 장면을 경험한 조선족은 “요즘은 MADE IN KOREA라는 표시가 있어도 통과되곤 합니다. 북한사람도 중국에서 한국 짝퉁을 많이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세관에게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만든 한국 짝퉁이다. 그러면 문제가 없습니다”라는 일화를 이야기한다. 즉 국경 너머에서 만들어진 한국 제품은 북한에서 묵인이라는 방식 또는 원산지를 중국산으로 바꾸어서 유통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물건의 원산지 혹은 생산지 라벨을 주목하기보다는 중·조 무역의 주체들과 유통 흐름 그리고 한국 제품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방식들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제작된 수예작품(2006) 단동에서 판매되는 한국의 땡처리 의류들(2011)


_ 중국 업체의 실질적인 사장은 누구인가?


중국 업체와 외국 기업에 대한 시각의 확대이다. 중국 업체라는 명칭에는 북한화교나 조선족이 운영하는 회사도 해당된다. 한국사람이 자본을 투입한 중국 회사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업체는 북한사람뿐만 아니라 한국사람도 상대한다. 기본적으로 한국사람이 북한사람과 직접 거래하는 것은 쉽지 않은 데다 중국의 무역 관련 규제로 인해 중간에 중국 업체가 개입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한편 단동에 북한의 민경련 대표가 상주하는 것은 한국사람을 상대로 직접적인 경제 거래를 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이익 창출의 극대화 즉 가격 문제 때문에 네 집단은 민경련보다는 중국 회사를 중간에 두고 간접적으로 경제 교류를 하는 것을 선호할 때도 있다. 따라서 국경 무역에서 표면상으로는 중간에 중국 대리 회사가 주도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북한과 한국의 거래가 증가하게 되면, 중·조 무역의 통계 수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단동에는 남·북 경협에서 무관세라는 국경 허물기를 뒷받침해주는 민경련이 존재하지만, 국경 무역에서는 오히려 현실적인 이유들로 중국 회사를 이용하는 국경 만들기 전략이 활용된다. 이와는 반대로 외국 기업이라는 명칭은 남·북 무역과 관련된 국경 허물기를 드러나지 않게 하는 방식에 동원된다. 한국 기업과 거래를 통해서 대북 사업을 하는 북한화교와 조선족에게 중간업자의 역할을 질문하면, 그들과 친해지기 전에는 “자신은 조선(북한)과 외국 기업을 연결하는 일을 조직한다”고 말한다. 삼국이 개입된 국경 무역에서 국경 허물기와 관련된 대북 사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동에 있는 한국 회사도 외국 회사로 지칭한다.


이러한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북한과 중국 무역에서 임가공 사업의 확대 원인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것은 남·북 경협 가운데 단동에서 행해지는 임가공이 차지하는 비중과 더불어,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중·조 무역과 남·북 경협의 유통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단동의 중국 해운 회사에 근 10년을 근무한 사람은 2007년 기준, 임가공을 포함한 북한과 한국의 실질적인 무역에서 95%가 단동에서 이루어지고, 평양과 한국의 직거래는 5% 정도로 파악한다.


_ 대북 제재 조치의 한계와 단견


2012년 한국 정부의 5·24조치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관련 기업이 더 큰 손실을 입었다. 실상 “5·24 대북 제재 조치”와 같은 남·북 무역 중단은 단동 국경 무역의 현실에서 한계가 있다. 이 정책은 남·북 경협과 중·조 무역이 각각의 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단견에서 나온 측면이 있다. 특히 남·북 경협에서 단동의 국경 무역의 역할과 방식을 간과하고 있다. 무역과 관련되어 한·중 국경에 대한 통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단동의 국경 무역의 다양한 방식 가운데 기본적으로 보세 무역에 대한 금지에 국한된 것이다. 단동의 네 집단은 민경련과 통일부를 통해야 하는 보세 무역 이외에도, 다양한 국경 무역의 방식을 알고 있고 활용하고 있다. 한편 한국 정부의 국경 만들기로 인해, 단동에서 한국사람의 국경 무역 활동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네 집단과 관련된 국경 무역의 토대와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2010년대 초반 단동의 실정이다. 2011년 말에 만난 북한화교와 조선족은 “무역 일들이 많아 긴장한다(바쁘다)”라는 말로 자신들의 삶을 표현한다. 단동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의 규모가 축소되었다는 말을 하지만, 가장인 아버지는 남고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간 예가 많다. 대북 무역의 실질적인 주체인 한국사람은 여전히 단동에 살고 있다. 북한사람의 규모는 늘고 있다. 2011년 12월 단동 페리의 객실에서는 임가공과 관련된 대북 사업을 변함없이 하고 있는 단동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과 대북 사업 가운데 수산물 무역의 경제적 타산을 알아보기 위해 단동을 처음 방문한 한국사람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목격된다. 그들의 대화에서는 그들과 거래하고 그들을 만나게 해주는 단동에 살고 있는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러한 삼국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중국 단동의 상황은 2013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2013년 2월 12일에 진행된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관련되어, 한국사회는 다양한 정치·외교·경제적인 관점을 통해서 한반도 정세를 진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본 연구자는 단동에 거주하는 정보제공자로부터 2013년 2월 초에 사진이 첨부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사진 속에는 압록강을 가로질러 신의주항으로 향하고 있는 북한 국적의 화물선이 보인다. 그리고 컨테이너 안의 물건을 확인할 수 없지만, “현대”라는 영문 명칭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사진은 2013년 2월 단동의 국경 무역의 현주소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현대” 영문 명칭이 선명한 컨테이너와 북한의 인공기를 단 화물선(2013.02):

단동과 신의주 사이의 압록강




1) 이 글은 『현대중국연구』제 14호 2집에 수록된 “삼국(북한, 중국, 한국)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중국 단동: 중·조와 남·북 무역의 교차점의 역할과 현황에 대한 분석” 가운데 일부분을 발췌하였다.